'불행한' 한화, 어디부터 잘못된 건가

기사입력 2016-04-17 10:08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글로 시작된다. 잘 되는 집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가족간에 사랑이 흐르고, 우애가 두터우며, 근심없이 건강하고 화목하다. 반면 안 좋은 집은 돈, 자녀 문제, 건강 등 세상사 온갖 문제가 얽혀 불행해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요즘 한화 이글스를 보면서 '불행한 가정'의 '여러가지 불행한 이유'가 떠오르는 까닭이 뭘까.

시즌 초반부터 한화가 크게 요동치며 흔들리고 있다. 우승 후보 전력이라더니, 최악의 경기력을 노출하며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오랫동안 최하위권을 맴돌면서 생긴 '가을야구' 갈증이 풀릴 줄 알았는데, 출발하자마자 '엔진 고장'이다. 더 큰 문제는 고장의 원인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16일 현재 2승10패, KBO리그 10개 팀 중 꼴찌다. 흔들림없이 한화를 지지해 온 이글스 '보살팬'들도 14일 두산 베어스전, 15일 LG 트윈스전을 보고 '절망'했을 것이다. 마운드가 조기에 붕괴되고, 뒤죽박죽 투수진 운영에 납득할 수 없는 '벌투'가 이어지고, 어이없는 실책, 의욕을 잃어버린 듯한 플레이가 어우러져 대참사를 낳았다. 두산에 17대2로 대패한 한화는 다음날 LG에 18대2로 졌다. 오합지졸, 프로팀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잠재해 있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듯 하다. 많은 야구인들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화 뒤에 김 감독의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팀 운영에 있다고 말한다. '김성근 야구'를 특정지었던 마운드, 불펜 운영
2016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1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LG를 상대로 2대18 대패를 당한 한화선수들이 덕아웃을 향하고 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4.15/

2016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1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LG를 상대로 2대18 대패를 확정짓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4.15/
부터 무너졌다. 선발 투수의 부진에 따른 빠른 교체는 팀 상황에 따른 고육지책이라고 치고 넘어가자. 그런데 전날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던 투수를 갑자기 다음날 선발로 예고하고, 승패가 크게 기운 경기에 투수를 벌 주듯이 계속 던지게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누구도 의견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 감독은 14일 경기 1회 2사후 등판해 4⅓이닝 동안 12실점을 한 송창식(31)을 두고 "스스로 (투구)감을 찾길 바랐다"고 했다. 난타를 당하면서 90개의 공을 던진 송창식은 프로 2~3년차 새파란 젊은 선수가 아닌, 2004년 프로에 입단한 베테랑, 온갖 궂은 일을 묵묵히 수행해 온 선수다. 김 감독은 해당 선수를 모욕하고, 팬들을 절망하게 하고, 동료 선수들의 의욕을 꺾는 발언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애초부터 '혹사' 혹은 '존중'이라는 개념은 김 감독의 머릿 속에 없는 듯 하다.

투수 보직, 역할 경계도 무너졌다.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토털사커'도 아니고, 요즘같아선 투수 전원이 선발이고, 불펜-마무리 후보다.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꿰맞추고, 집어넣는 부품같다. 이렇게 해서라도 결과가 좋게 나오면 큰 말 없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더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외국인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는 2군에 머물고 있다. 몇몇 주축 선수들은 부상 후유증으로 가동 중단 상태다. 선수 부상에서 자유로운 팀은 없다고 해도, 유독 한화에 주축 선수 부상이 많은 이유가 뭘까. 마무리 캠프, 전지훈련 기간에 가장 오랜 시간 훈련에 매달렸던 팀이 이글스다. 한 프로야구 현역 감독은 "자원이 저렇게 좋은데, 저런 성적이 난다는 게 미스터리하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한화는 외부 FA 이용규 정근우 권 혁 송은범 배영수 정우람 심수창 등을 영입해 전력을 키웠다. 다른 팀이 부러워하는 전력 보강이다.


2016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1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LG 정주현이 2회초 1사 만루에서 만루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고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4.15/
지난 시즌 한화는 매경기 끝까지 전력을 쏟아 '내일이 없는 올인야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기 후반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여 심심찮게 짜릿한 역전승을 거둬 중독성이 강한 야구를 뜻하는 '마리한화'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전의 무기력했던 한화와는 달랐다. 그런데 '매경기 무리를 하면서까지 승부에 올인해야하는가'의 문제는 따로 생각해봐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게 시즌 전체고 팀의 미래다. 대다수 감독이 선수 운영을 얘기할 때 '팀당 144경기, 장기 레이스'를 얘기한다. 써보고 안 되면 내팽개거나, 당장 오늘 경기 승리와 시즌 성적에 목매고, 훈련량이 경기력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선수를 몰아세우면서, 기계부품처럼 생각하는 지도자로는 선수 마음을 사기도 어렵고 미래를 얘기할 수도 없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한화는 단기적인 성적에 집착했다. 노 지도자의 옛 명성, 카리스마에 기대어 성적을 내보려고, 70대 감독을 영입해 변화를 꾀했다. 프로야구 흐름과 조금 다른 행보였다. 그만큼 구단은 성적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누구도 3년, 5년 뒤 한화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한화 관계자들은 "애초부터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고 김성근 감독을 모셔온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아프게 다가올 것 같다. 미래뿐만 아니라 지금 성적, 두 개를 모두 놓치면 한화 암흑기는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답답한 현실에 갖혀있는 한화 선수들이 태업을 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김 감독이 취임한 지난해 초반에도 구단 안팎에서 나돌았던 얘기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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