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한 철부지라고밖에 볼 수 없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 패턴이다. 금세 들떠서 흥분하다가 또 금세 의기소침, 시니컬해진다. 해야 하는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짓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툭툭 내뱉어 주변 사람들을 당혹케한다. 국내 최고몸값의 외국인 투수,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라 불리는 에스밀 로저스가 딱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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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저스의 발언 자체는 프로 선수라면, 특히 190만달러의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몸값을 받으며 '에이스' 대우를 받은 선수라면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혹은 자기의 희망사항이든 팀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한화 구단으로부터 역대 최고몸값과 함께 지극정성으로 관리를 받은 입장이라면 더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하지만 로저스는 그렇지 못했다. 구단의 입장이나 자신의 몸값에 부여된 책임감, 팀 동료와 묵묵히 응원하는 대다수 팬에 대한 의무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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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수원 kt전 복귀 이후에도 컨디션은 계속 좋지 않았다. 구속이나 구위가 지난해에 비해 떨어진 것에서 확인된다. 결국 지난 5일 대구 삼성전에서 3회에 자진강판한 이후 MRI 검진에서 팔꿈치에 염증이 발견됐다. 6일에 다시 1군에서 빠진 로저스는 20일 가까이 재활 중이다. 그리고 수술은 아직까지는 '고려 대상'에 있는 옵션일 뿐이다. 구단 내부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
수술을 받으면 올시즌은 끝이다. 그래서 구단은 수술이 아닌 재활을 통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선수의 입장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단 무조건 수술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긴 재활을 거쳐야 하고, 수술 이후 구위 회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예 몇 년 쉬더라도 부상 유발 요인을 깔끔히 제거하고 가려는 선수도 있다. 로저스가 이에 해당한다. 이미 미국에서도 받기 어려운 190만달러를 챙겼으니 수술을 한 뒤 가족과 푹 쉬면서 다시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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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스스로 수술 결정을 내려버린 로저스가 그간 재활에 성실히 임해왔을까. 별로 그렇지 않다. 지난 6일 엔트리 제외 이후 로저스는 대전에서 재활을 진행했다. 전동자전거를 타고 나와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다. 그런데 그때마다 로저스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들을 해왔다. 선수단 타격 훈련에 앞서 먼저 타석에 들어가 배팅볼을 전력으로 받아쳐 외야로 날리는가 하면, 1루쪽에서 타구를 받아 송구하기도 했다. 배트를 들고다니며 힘차게 돌린적도 부지기수다. 분명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행위들이다.
설령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보여줘서는 안될 모습이다. 어렵게 탈꼴찌 싸움을 벌이는 팀의 '진짜 에이스'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복귀해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자세로 진지하게 재활에 임하는 게 맞다. 그간의 로저스에게서 '진지함'이나 '프로의식'이라곤 마운드에 서 있을 때 일부를 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가 만약 수술을 하지 않고 1군에 돌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 '에이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순 없을 듯 하다. '역대 최고몸값' 190만달러도 '에이스' 칭호도 경솔한 로저스에게는 모두 어울리지 않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