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경솔한 로저스, 최고몸값프로 자격없다

기사입력 2016-06-24 11:27


경솔한 철부지라고밖에 볼 수 없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 패턴이다. 금세 들떠서 흥분하다가 또 금세 의기소침, 시니컬해진다. 해야 하는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짓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툭툭 내뱉어 주변 사람들을 당혹케한다. 국내 최고몸값의 외국인 투수,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라 불리는 에스밀 로저스가 딱 이렇다.


kt와 한화의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가 16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예정된 가운데 양팀 선수들이 훈련을 펼쳤다. kt 마르테와 한화 로저스, 로사리오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06.16/
15연승의 무시무시한 괴력을 과시하던 NC 다이노스와의 원정 3연전에서 1승1무로 선전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던 한화 구단이 갑작스러운 악재를 만났다. 그것도 황당한 경로를 통해서다. 팀이 NC와 연장 혈투를 벌이던 23일 밤, 로저스는 한 팬과 SNS상에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재활중인 로저스의 개인 취미활동에 대해 뭐라고 할 순 없다. SNS, 채팅, 가족과의 나들이. 법의 범주를 벗어나거나 몸에 해가 되는 행위만 아니라면 다 괜찮다.

그런데 로저스는 팬과의 SNS 메시지 채팅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시즌 아웃이다.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라고 답변했다. 선수로부터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팬은 대화 내용을 캡쳐해 한 야구관련 커뮤니티게시판에 올렸고, 이 내용이 금세 야구팬 사이에 퍼졌다. 자신이 우연히 접하게 된 중요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한 이 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로저스의 발언 자체는 프로 선수라면, 특히 190만달러의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몸값을 받으며 '에이스' 대우를 받은 선수라면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혹은 자기의 희망사항이든 팀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한화 구단으로부터 역대 최고몸값과 함께 지극정성으로 관리를 받은 입장이라면 더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하지만 로저스는 그렇지 못했다. 구단의 입장이나 자신의 몸값에 부여된 책임감, 팀 동료와 묵묵히 응원하는 대다수 팬에 대한 의무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15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화와 kt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다. 방수포가 덮여있는 그라운드에 한화 로저스가 나와 외야로 펑고를 날리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6.15/
선수의 수술과 향후 복귀 계획 같은 사안은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사항이 공개되는 시기나 방법까지도 정리돼야 한다. 자칫 어설프게 공개될 경우 선수단의 사기 및 향후 경기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저스의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맞다. 이미 지난 1월 스프링캠프때부터 그랬다. 시즌 초반, 로저스가 1군에 올라오지 않은 채 계속 서산에서 재활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로저스가 1군에 올라오지 않은 이유가 한 코치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악성 루머가 나돌기도 했던 시기다. 로저스는 그저 1군에서 던질 상태가 아니라 서산에 있던 것 뿐이다.

5월8일 수원 kt전 복귀 이후에도 컨디션은 계속 좋지 않았다. 구속이나 구위가 지난해에 비해 떨어진 것에서 확인된다. 결국 지난 5일 대구 삼성전에서 3회에 자진강판한 이후 MRI 검진에서 팔꿈치에 염증이 발견됐다. 6일에 다시 1군에서 빠진 로저스는 20일 가까이 재활 중이다. 그리고 수술은 아직까지는 '고려 대상'에 있는 옵션일 뿐이다. 구단 내부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

수술을 받으면 올시즌은 끝이다. 그래서 구단은 수술이 아닌 재활을 통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선수의 입장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단 무조건 수술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긴 재활을 거쳐야 하고, 수술 이후 구위 회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예 몇 년 쉬더라도 부상 유발 요인을 깔끔히 제거하고 가려는 선수도 있다. 로저스가 이에 해당한다. 이미 미국에서도 받기 어려운 190만달러를 챙겼으니 수술을 한 뒤 가족과 푹 쉬면서 다시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6 프로야구 경기가 2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다. 이날 선발 투수로 나올 예정인 한화 로저스가 경기 전 배트로 스윙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고척돔=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5.24/

그러나 과연 스스로 수술 결정을 내려버린 로저스가 그간 재활에 성실히 임해왔을까. 별로 그렇지 않다. 지난 6일 엔트리 제외 이후 로저스는 대전에서 재활을 진행했다. 전동자전거를 타고 나와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다. 그런데 그때마다 로저스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들을 해왔다. 선수단 타격 훈련에 앞서 먼저 타석에 들어가 배팅볼을 전력으로 받아쳐 외야로 날리는가 하면, 1루쪽에서 타구를 받아 송구하기도 했다. 배트를 들고다니며 힘차게 돌린적도 부지기수다. 분명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행위들이다.

설령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보여줘서는 안될 모습이다. 어렵게 탈꼴찌 싸움을 벌이는 팀의 '진짜 에이스'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복귀해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자세로 진지하게 재활에 임하는 게 맞다. 그간의 로저스에게서 '진지함'이나 '프로의식'이라곤 마운드에 서 있을 때 일부를 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가 만약 수술을 하지 않고 1군에 돌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 '에이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순 없을 듯 하다. '역대 최고몸값' 190만달러도 '에이스' 칭호도 경솔한 로저스에게는 모두 어울리지 않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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