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 아버지들 "야구선수 아들 말릴 수 없었다"

기사입력 2016-07-21 20:02


2016 프로야구 KBO리그 LG트윈스와 넥센히어로즈의 경기가 25일 서울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넥센 유재신이 10회초 2사 1,2루에서 1타점 적시타를 치고 1루에서 환호하고 있다. 잠실=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6.25/

2016 프로야구 kt와 LG의 경기가 2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LG 유원상이 힘차게 볼을 던지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4.29.

지난달 27일 넥센 히어로즈는 휘문고 유격수 이정후를 2017년 신인 1차 지명선수로 뽑았다. 이정후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이종범 MBC 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유승안 경찰 감독의 장남인 유원상이 2006년 한화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프로 1차 지명을 받은 것은 이종범-이정후 부자가 처음이다. 신인 1차 지명 선수 중 유일한 야수인 이정후는 "아버지보다 뛰어난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이종범 부자가 화제가 되긴 했지만, 대를 이은 야구가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승안 감독의 두 아들 유원상(LG 트윈스)과 유민상(kt 위즈)을 비롯해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승(210승)에 빛나는 송진우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 송우석(전 한화) 송우현(넥센 히어로즈) 형제도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두산 베어스가 2014년 7차 3라운드에 지명한 외야수 이성곤은 이순철 SBS 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히어로즈 내야수 유재신의 아버지는 1984년 한국시리즈 MVP인 유두열 전 롯데 자이언츠 코치다. 이병훈 전 KBS 스포츠 해설위원의 장남 이청하(전 LG 투수), 차남 이용하(넥센)도 야구선수다. 호주 리그에서 활약중인 임경완과 KIA 타이거즈 최영필, NC 다이노스 이호준, 한화 권용관도 야구선수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 부자 야구선수의 길은 비슷하다. 유명 야구선수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게 되고, 관심과 호기심이 배트와 글러브를 들게 했다.

송진우 위원은 "아버지가 TV에 나오고 언론에 다뤄지는 걸 보고 아이들이 신기하게 느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싶어했는데, 아무래도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할 때가 아닌가. 남자라면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설명
2009년 7월 8일 광주 무드경기장에서 열린 LG 트윈스- 기아 타이거즈전. 경기에 앞서 열린 시상식에서 기아 타이거즈 이종범이 500도루, 1000득점, 2500루타 달성 수상을 한 후 아들 이정후군에게서 꽃다발을 받아들고 있다. 스포츠조선 DB
했다.

물론, 아버지의 운동 유전자가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종범 위원은 "정후가 어렸을 때 공을 갖고 노는 걸 좋아하고 또 잘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해외 전지훈련간 사이 테스트를 보고 야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일반화하기 어렵긴 하지만 운동선수 출신 아버지를 둔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체격조건이 좋다. 비슷한 또래보다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야구인에게 2세도 야구를 시키겠냐고 물어보면 대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야구로 성공하기 위해 감내해야할 고통과 노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성공 확율도 극히 낮지만, 실패했을 때 충격이 너무 크다. 야구를 그만두게 될 경우 사회 적응에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의 꿈을 쉽게 꺾기는 어렵다.

조성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 조영준은 아버지의 모교인 충암중 1학년 야구선수다. 조성환 위원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말렸는데도 야구를 시작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리틀야구팀에 찾아가 테스트를 할 때 아이가 얼마나 야구를 진지하게 대하는 가를 유심히 봤다"고 했다. 이호준의 아들 이동훈은 수원북중 2학년 야구선수다. 1학년 때 갑자기 야구를 하겠다고 해 허락했다고 한다. 이호준은 "상당히 늦게 시작했는데, 아버지보다 열정은 뛰어난 것 같다. 욕심부리지말고 기본기를 착실히 하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이종범 위원은 조금 다른 케이스다. 운동을 하더라도 야구는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휘문고 이정후(왼쪽)가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한 뒤 아버지인 이종범 해설위원과 나란히 섰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운동에 재능이 있어 야구를 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아버지와 비교가 되지 않겠나. 우리 때는 이를 악물고 야구를 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운동을 한다면 축구나 골프같은 다른 운동이 좋을 것 같았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중압감에 대한 걱정에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들의 뜻을 꺾지 못한다. 송진우 위원은 "공부를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실패했을 때 후유증이 크긴 해도, 하고 싶은 야구를 시킨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야구선수 아버지, 학부모라면 유리할 게 같은데 애로점이 있다. 기술적인면을 조언하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한다. 소속팀의 감독, 코치가 있어 혼란을 줄 수 있어서다. 유승안 감독은 두 아들과 함께 있을 때도 야구 얘기를 안 한다고 했다.

송진우 위원은 "그동안 야구 얘기는 거의 안 한 것 같다. 운동장에서 안 좋을 일이 있을 때도 있지만 재미있게 야구를 하라는 얘기는 해줬다. 재미가 없으면 운동장에 나가는 게 싫어진다"고 했다.

이종범 위원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차피 야구는 직접 부딛쳐 스스로 깨쳐야 한다. 다만 멘탈적인 부분은 얘기한다. 아들이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되기에 앞서 팀에 잘 융화돼 많은 걸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지금까지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은 아들은 없다. 아버지 덕분에 잠깐 주목을 받다가도 소리없이 묻힌 경우가 적지 않다. 스타선수 출신 아버지의 존재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