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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처럼 '야구 천재'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선수가 또 있을까. 단순히 '안타 제조기', '히트 머신'으로 그를 설명하는 건 왠지 허전하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한국이 30년간 이겨보겠다는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망언(?)으로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으나, 이치로(42)의 천재성을 두고 물음표를 달 사람은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이치로는 '야구천재'라는 말의 의미를 다르게 봤다. 그는 '자신을 야구천재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노력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사람이 천재라면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사람이 천재라면 나는 천재가 맞다"고 했다. 이치로가 조금 일찍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면, 메이저리그 역사가 다라졌을 수도 있었다.
3000안타를 향해 달려온 이치로. 최근 기록을 눈앞에 두고 주춤했다. 지난 7월 2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이후 이날 8경기 만에 선발로 나섰는데, 세인트루이스전 이후 7경기에서 10타석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 이치로는 이 기간을 돌아보며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통산 3000안타는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 입회 보증서다. 이치로에 앞서 3000안타를 달성하고 자격요건을 갖춘 선수 중 야구도박으로 영구제명된 피트 로즈, 금지약물을 복용한 라파엘 팔메이로를 제외하고 모두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오릭스에 입단할 때 이치로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강타자 켄 그리피주니어의 유니폼을 액자에 넣어 기숙사 방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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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천재' 이치로도 시간을 완벽하게 이겨낼 수는 없다.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0년 3할1푼5리를 기록한 후 매년 2할대 타율에 머물렀고, 주전 자리를 잃었다. 이런 이치로를 두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 다수의 일본 구단이 선수, 지도자로 영입을 제의했지만, 그는 끝까지 메이저리그에 남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불혹을 넘기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으나 이치로는 3000안타를 보며 달렸다.
이치로는 2012년 시즌 중간에 "새로운 분위기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며 시애틀에서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뉴욕 양키스에서 2년 반을 보낸 이치로는 2014년 시즌이 끝나고 FA가 되어 마이애미와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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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안타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이치로다. 뛰어난 콘택트로 수비수가 없는 빈 공간으로 타구를 보내 안타를 만들고, 땅볼타구를 날린 뒤 빠른 발을 활용해 내야안타를 양산했다.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매일 아내가 만들어준 카레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에도 79kg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이치로의 뉴욕 양키스 시절 팀 동료인 데릭 지터(통산 3465안타)는 "이치로같은 선수와 팀 동료로 함께 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에게 야구는 게임 이상의 장인의 기술 같은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며 3000안타를 축하하며 찬사를 보냈다. 이치로는 3000안타를 달성한 후 인터뷰에서 "먼 미래보다 내일 경기에 출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