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뒤늦게 핀 꽃들, 끈기와 성실성 그리고 '運'

기사입력 2016-12-15 21:17


KIA 최형우는 2002년 입단해 6년이라는 무명의 시간을 보낸 뒤 2008년 신인왕에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야수 부문 수상자로 상을 받은 최형우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중고 신인왕'으로 최형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오프시즌 FA(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최형우는 200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 48순위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가 신인왕을 차지한 것은 입단 후 6년이 지난 2008년이었다. 그는 그 사이 경찰야구단 등 2군서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전주고를 졸업한 최형우는 큰 주목을 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2군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기량을 갈고닦아 고난의 시간을 신인왕으로 보상받은 것이다. 입단 계약금이 5000만원에 불과했던 최형우는 이제 4년간 100억원을 받는 스포츠 재벌이 됐다.

올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넥센 히어로즈 신재영도 중고 신인왕이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69순위로 NC 다이노스 유니폼을 입은 신재영은 올시즌 1군에 데뷔해 15승7패, 평균자책점 3.90을 기록하며 만장일치에 가까운 득표로 역대 최고령 신인왕(27세)이 됐다. 신재영 역시 2군서 5시즌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1군 2년차인 내년 올해 2700만원에서 307.4% 인상된 1억1000만원의 연봉을 받기로 했다.

주목받지 못한 신인의 위치에 있던 이들이 5년 이상의 성장 과정을 견디며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타고난 성실성을 바탕으로 성공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노력없이 대가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이유다.

또 하나는 기회의 측면이다. 최형우가 입단했을 때 삼성은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삼성은 2002년, 2005~2006년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타선에는 양준혁 마해영 이승엽 진갑용 심정수 등 거포들이 즐비했다. 최형우가 타선의 주축으로 나서기는 힘든 두터운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최형우가 주전을 꿰찬 2008년은 이미 이승엽과 마해영이 팀을 떠나고 양준혁과 심정수 등이 주류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시점이었다. 삼성도 선동열 감독 취임 후 팀 컬러가 투수 및 수비 중심으로 바뀌면서 최형우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신재영도 마찬가지다. 올시즌 전 넥센은 로테이션을 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발 자원이 빈약했다. 그가 선발로 가능성이 높다고 본 염경엽 감독이 믿음을 보냈다. 2013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신재영은 경찰야구단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해 가을 전역 후 본격적인 성장 과정을 밟게 된다. 그의 가능성을 타진한 지도자는 지난해 마무리 캠프 때 이강철 수석코치(현 두산 베어스 코치)였다. 이 코치는 신재영에 대해 볼끝의 움직임과 제구력이 좋다고 보고 자신과 같은 사이드암이라는 점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손 혁 투수코치도 투구폼과 마운드에서의 행동, 그리고 마인드 부문에서 성장에 도움을 줬다. 에이스인 앤디 밴헤켄이 떠나면서 선발진이 허술해지자 염 감독은 피어밴드, 코엘로, 박주현, 양 훈, 그리고 신인 신재영을 5선발로 중용했다. 신재영은 이들 5명 가운데 유일하게 끝까지 로테이션을 지켰다.

오랜 무명의 세월을 견뎌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로 박병호 정의윤도 포함될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성남고에서 4연타석 홈런을 때린 박병호가 1차 지명, 정의윤은 2차 지명 1순위로 입단해 LG의 미래를 짊어질 거포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둘 다 LG에서는 기량을 꽃피우지 못했다.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백업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박병호는 2011년 넥센으로 옮긴 뒤 최고의 홈런타자로 성장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정의윤은 지난해 중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자마자 4번 타자를 꿰차더니 올시즌에는 타율 3할1푼1리, 27홈런, 100타점을 때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두 선수 모두 트레이드 후 기회가 꾸준히 주어지면서 자신감이 붙고 타격감이 상승세를 탔다고 볼 수 있다. 잠재력을 인정해주는 팀으로 옮기면 심리적으로 편하고 자신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트레이드의 효용성이다. 두 선수 모두 이 부분을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성장 신화'로 마이크 피아자가 있다. 198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62라운드 전체 1389번째로 LA 다저스의 지명을 받은 피아자는 199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이듬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후 피아자는 공격형 포수를 이름을 드높이며 통산 427홈런을 날렸고, 올스타에 12번 뽑혔다. 입단 후 그가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91년으로 그해 더블A와 트리플A에서 타율 2할7푼7리, 29홈런, 80타점을 기록했고, 1992년에는 125경기에서 타율 3할5푼에 23홈런, 90타점을 때린 뒤 메이저리그로 올라섰다. 피아자는 16살 때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 입성 후에는 토미 라소다 감독의 애정을 받으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도미니카 윈터리그 등 출전하는 등 피아자는 마이너리그 시절 성장을 위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아카((赤) 고질라'로 유명한 히로시마 카프의 시마 시게노부가 유명하다. 10년간 2군을 전전하던 시마는 2004년 1군에 올라 32개의 홈런을 날리며 팀의 간판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히로시마의 상징인 붉은 색(아카)과 그의 배번 55번의 대명사인 마쓰이 히데키의 별명 '고질라'가 합쳐져 아카 고질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마의 능력을 간파하고 키운 지도자는 우치다 타격코치였다. 2003년 후 방출 위기에 놓였던 시마는 2004년 오가타, 모리가사, 아라이 등 팀의 주력 타자들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기회를 잡았다.

무명에서 벗어나려면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팀내 환경이 조성돼 기회도 주어져야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성실성이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2012년 입단한 대졸 신인 넥센 히어로즈 신재영은 올시즌 1군에 데뷔해 곧바로 주축 선발로 올라서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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