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두산 김강률, 한국의 '오타니'된 그날 비하인드 스토리

고재완 기자

기사입력 2017-08-24 01:26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2017 KBO 리그 경기가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9회초 2사 1,2루 타석에 들어선 두산 김강률이 우익수 앞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7.08.22/

두산 베어스의 불펜 투수 김강률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각종 방송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김강률 본인은 "방송 인터뷰에서도 투구보다 안타 얘기만 묻는다"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그날 야구하면서 가장 많은 문자를 받았다"고 웃었다.

그래서 '한국의 오타니'가 된 그날을 되짚어 봤다. 김강률은 지난 22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SK 와이번스의 경기 8회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이 9회초 9-6으로 역전에 성공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2사 1,2루에 타석에 들어섰다.

▶"중학교 이후 타석은 처음이에요."

고교 야구부에서는 요즘도 곧잘 4번 타자-투수가 등장한다. 하지만 김강률은 중학교 이후에는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서본 적이 없다.

김강률은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지명타자 제도가 생겼어요. 그래서 타석에 설 일이 없었죠. 물론 중학교 때는 팀에서 좀 친다고 알아줬죠."라고 웃었다.

그래서 쳐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호기심은 있었죠. 타석에 서볼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냥 '서보면 되게 신기하겠다' 정도였어요."

▶"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9회초가 2번 류지혁부터 시작됐으니 한용덕 수석 코치도, 강석천 타격 코치도 1번 김강률이 타석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 차례가 안올줄 알고 한 코치님이나 강 코치님도 '나가게 되면 치지 말고 그냥 서있으라'고 했어요.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9회 시작되자마자 2점 홈런 2방으로 역전을 하더니 2사 후 자신의 앞에서 박세혁과 김재호가 연속 안타를 치고 나갔다.

"루상에 주자가 2명이나 있으니까 강코치님이 칠 수 있으면 쳐보라고 했어요."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2017 KBO 리그 경기가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9회초 2사 1,2루 타석에 들어선 두산 김강률이 우익수 앞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7.08.22/
▶타자 장비도 없던 투수

그동안 투수로만 등판했으니 타자 장비가 있을리 만무했다. "제가 나갈 차례가 되니까 (류)지혁이가 열심히 장비를 구해줬죠. 헬멧은 44번이 적힌 닉 에반스 것을 빌려다 줬고요. 보호 장비는 처음에는 자기 것을 줬다가 저에게 작으니까 (민)병헌이형걸 가져다 주더라고요."

배트는 처음에 눈에 보인 박건우 것을 쥐었다. "하지만 (박)건우가 본인 시합용이어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류지혁 것을 빌려 나갔다.

▶"안타는 100% 운이었다"

상대 투수 백인식은 김강률을 상대로 연속 볼 3개를 던졌다. 이어 4구째에 김강률은 힘차게 배트를 휘둘러 헛스윙이 됐다.

"저에게는 스트라이크로 보였어요." 하지만 명백히 볼이었다. "2루에 있던 (박)세혁이가 제가 스윙하는 걸 보더니 '지금 뭐하는 거냐'고 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스윙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2017 KBO 리그 경기가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9회초 2사 1,2루 타석에 들어선 두산 김강률이 우익수 앞 1타점 적시타를 치고 강동우 1루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7.08.22/
안타 상황은 목격자들의 말이 다르다. 한용덕 수석코치는 그날 상황에 대해 "공이 와서 맞아준 것이지 안타를 친게 아니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강동우 1루 주루코치는 "스윙을 하는 것을 보니까 소질이 있더라. 나중에 대타로 자주 써야겠더라"고 치켜세웠다.

"스윙하지 말라는 사인이 나오지 않았냐"고 묻자 김강률은 "나왔을 수도 있는데 제가 타자 사인을 몰라요. 그래서 사인을 내도 몰랐을 거예요"라고 웃으며 "안타는 100% 운이에요."라고 했다.

▶"이제 타자는 은퇴"

이닝이 끝나고 김강률이 더그아웃에 들어온 후에도 웃음바다가 됐다. "동료들에게 욕많이 먹었어요. 4점차로 벌려놔서 (이)용찬이 세이브 날려먹었다고. '넌 너밖에 모르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이날 김강률은 야구하면서 가장 많은 문자를 받았다. "모두 '이런 날도 있네'라고 답장을 보내줬어요."

하지만 타자 욕심은 더이상 없다. "잘쳐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그냥 해본 거예요. 해프닝이죠 해프닝. 다시 타석에 설 기회는 앞으로도 없을 걸요. 이제 본업에 충실해야죠."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