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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없었다. 너무 이기고 싶었다."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야구장에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차전이 너무나 아쉬워서... 후회 아닌 후회가 남는 것 같다. 그래도 지인들과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기분 전환을 위해 애쓰고 있다. 두산과 NC의 플레이오프 경기도 챙겨보려 한다. 다른 팀 경기를 보면 재밌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 물론 '저 무대에서 우리 팀이 뛰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롯데는 떨어졌지만, 손아섭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 통한의 병살타가 기억난다. 그 때 아픔이 이번 가을야구에 도움이 됐나.
▶그 때를 돌이켜보면 젊은 혈기에 자신가미 넘쳤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반대로 지금은 결과를 걱정한다. 그 때에 비해 기대치도 높아지고, 나 스스로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더라. 그래도 그 때와 비교하면 여유가 생겼고, 어느정도 평정심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오직 패기로 투박하고, 거친 플레이를 보여드리는 모습을 다소 줄었지만 요령이 생겼다고 할까. 그 때는 '무조건 친다'고 초구에 과감하게 쳤지만 지금 그 때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면 '컨트롤이 좋은 투수가 아니면 무조건 하나 보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비하인드스토리를 하나 소개해드리면, 내 타석 뒤이 들어오는 전준우형에게 "체인지업이 초구에 들어올 것 같다. 노리고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정우람(당시 SK) 형이 체인지업을 던졌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휘둘렀었다.
-3차전 지고 있는 상황 세리머니, 그리고 4차전 홈런성 타구를 날리고 '제발'이라고 간절히 외치는 게 화제였다.
▶3차전 누가 봐도 뒤집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만약, 그 경기가 5차전이었다면 내가 홈런을 치고 그렇게 했을 지 나도 의문이다. 그런데 3차전이었다. 4차전을 치러야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3차전이 아니더라도 4차전에서 너무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홈런을 치고 2루를 도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무 좋아해주시는 롯데팬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덕아웃을 향해 세리머니를 한 것 같다. 나도 내가 왜 그런 세리머니를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느낌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포스트시즌 강한 인상에 롯데팬들의 지지도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제 야구 끝난 지 3일 됐는데, 그 전보다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신다. 그 전에도 좋아해주셨지만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정말 많은 분들이 지켜봐주셨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롯데 야구를 보셨고, 내 마음 이상으로 아쉬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말로 표현이 안되는 감정이 느껴지더라. 우리가 플레이오프 갔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 생각만 났다. 너무 감사하다. 나도 부족하겠지만, 팬들께 보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시즌 전체를 돌이켜보자. 잘된 점, 아쉬운 점은?
▶잘된 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144경기 전 경기를 2년 연속 뛰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목표였다.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잘해도 다치면 소용없다. 두 번째는 최근 몇년 장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변화도 줘봤고 실패도 했다. 그래도 20개 홈런을 치고,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해 어느정도 목표를 이뤘다. 조금 아쉬운 점은 타율(0.335)이다. 더 좋은 기록 낼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내 부주의로 인해 타율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타점도 90개 정도는 예상했는데 거기에 못미쳤다. 8월에 정말 컨디션이 좋았는데, 거기서 더 잘하려고 미세한 변화를 줬다 흔들린 적이 있다. 그게 내 부주의였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걸 올시즌을 통해 배웠다.
-200안타(193안타 마감)는 의식했나, 안했나. 아깝지 않나.
▶솔직히 200안타 목표는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마지막까지 내가 엄청 신경쓴 줄 알더라.(웃음)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일찍 포기했었다. 10경기 남기고 안타 10개가 남았다면 의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즌 막판 남은 경기수와 안타수를 봤을 때 도저히 안될 것 같더라. 그래서 요즘 후회를 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의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너무 마음을 내려놓고 한 게 집중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5경기 성적이 안좋았다. 차라리 욕심을 내봤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후회는 한다. 앞으로 야구할 날은 많다. 200안타 기록은 계속 목표로 하겠다.
-최근 몇년 간 1, 2, 3번 타순을 오가고 있는데 자신은 어떤 타순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난 아무래도 2번이 좋다. 사람이 간사한 게, 2번 자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 나온다. 점점 편하게 느껴진다. 부담은 3번이 가장 심하다. 몰론, 타순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독, 코치님께서 정해주시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손광민 시절 우익수 수비를 30점이라고 한다면, 현재 우익수 수비는 스스로 몇 점이나 줄 수 있나.
▶지금은 70점 정도는 왔다고 생각한다. 수비도 타격과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송구는 이전이 나았단 것 같다. 그 때는 앞뒤 안가리고 주자 잡으려고 무조건 송구를 쐈다. 그 때는 주자가 뛰면 속으로 "땡큐"를 외쳤다. 그런데 요즘은 잡을 수 있는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생각할 때만 강한 송구를 한다. 주자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 송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큰 실책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를 계속하다 보니, 나도 능구렁이가 되가는 것 같다.(웃음)
-이대호가 돌아온 롯데,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나.
▶대호형이 복귀하니 정말 든든하더라. 야구라는 스포츠가 상대와의 기싸움이 기반에 깔려있다. 이대호라는 선수가 4번에 버텨주면 상대는 위압감을 받고, 우리는 든든함을 느낀다. 그 심리적 요소가 선수 개개인에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정신적으로 선수들에게 큰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손아섭의 트레이드마크는 전력 질주다. 앞으로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그 약속 지킬 수 있겠나.
▶내 햄스트링과 종아리만 버텨주고 건재하다면 난 은퇴할 때까지 무조건 전속력으로 뛸거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며 배운 게 전력질주였다. 괜히 멋있어보이려 하는 것도 아니다. 전력질주를 해야 상대방 실책을 유도를 할 수 있다. 내 안타 기록과 관계 없이, 팀 승리에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실책 하나가 경기 흐름을 정말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이닝 대량득점은 실책이 동반돼야 한다. 그래야 투수가 힘이 빠지고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손아섭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아직은 FA 선수가 아니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것들은 많지만, 지금 그 얘기들을 말씀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FA 자격을 정식으로 취득하면, 그 때 말씀을 드리겠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