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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고지가 저 멀리 보이던 순간이었다. SK 와이번스는 4회초 터진 강승호의 2점 홈런 덕분에 6회초까지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더구나 이날 선발로 나온 메릴 켈리도 5회까지 볼넷 2개, 사구 1개만 내준 채 노히트노런으로 호투하고 있었다. 이대로 4이닝만 버티면 SK는 8년 만에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전까지 켈리가 이전까지 워낙 노히트노런으로 호투하고 있었기에 교체하기는 애매했다. 투수를 진정시키고 집중력을 끌어올려주기 위한 마운드 방문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이 걸린 상황이라면 조금 더 과감하고 냉정해질 필요도 있었을 듯 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모처럼 닥친 위기를 끝내야 했다.
여기서 SK 벤치의 선택은 '켈리에게 맡긴다'였다. 불펜진의 피로가 누적된 데다 켈리의 앞선 퍼포먼스가 뛰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투구수에도 다소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켈리가 이 벤치의 믿음에 응답하지 못했다. 1사 1, 2루에서 최주환에게 우전 적시 2루타로 1점을 내준 뒤 계속된 1사 2, 3루 위기에서마저 양의지에게 2타점짜리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타오르던 SK의 기세가 완전히 꺾이고, 동시에 두산이 경기 초반 안 풀리던 흐름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순간이었다. 최주환에게 장타를 맞은 뒤에 SK 벤치가 움직이지 못한 점도 '갑분싸'를 만든 배경이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