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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달 17일 끝난 2019 WBSC 프리미어12. 한일전으로 치러진 결승전은 충격적이었다.
짧게 짧게 이어던진 일본 투수들은 놀랄 만큼 강했다. 하체를 활용해 뿌리는 패스트볼은 150㎞를 쉽게 넘었다. 중요한 사실은 '제구가 되는' 빠른 공을 던진다는 점이다. 볼끝에 힘도 넘쳤다. 제구된 패스트볼 위력이 좋으니 변화구 위력이 배가됐다. 타이밍을 맞히기 쉽지 않았다. 생소함까지 겹쳐 한국 타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다.
일본은 꾸준히 제구를 갖춘 메이저리그급 파이어볼러를 배출해왔다. 화수분 처럼 끊임 없이 나온다. 오타니 쇼헤이(25·LA 에인절스)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 기록인 165㎞를 찍은 뒤 태평양을 건넜다. '제2의 오타니'도 대기중이다. 지바 롯데에 입단한 특급 유망주 사사키 로키(18)다. 고교 시절 무려 163㎞를 찍었다. 지난달 30일 지바 롯데 입단식에서 사사키는 "오타니의 스피드를 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실제 오타니의 등번호 17번을 배정받았다. 그는 프로 입단 일성으로 "장점을 살려 시속 170㎞의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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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커지고 있는 격차.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유소년 규모의 차이는 차치하고 시스템과 지도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 지상주의'는 학생야구에도 만연해 있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 부터 '기본을 건너 뛴 실전' 위주의 지도가 이뤄진다. 기본인 포심 패스트볼이 완성되기도 전에 브레이킹 볼부터 가르친다. 자신의 몸, 특히 하체를 활용한 투구의 기본기를 배워야 할 시기. 세게 던져 타자를 제압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에 꺾어 던져 배트를 피해가는 법을 배운다. 변화구를 많이 던지다 뒤늦게 스피드를 늘리려 해보지만 이미 신체 메커니즘은 변화구에 젖어있다. 대기만성형 빠른 공 투수가 나오기 힘든 이유다.
고교 시절 나무배트 사용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운동역학 전문가인 차명주 국민대학교 운동역학실 연구위원은 "고교 나무배트 사용 이후 홈런타자도, 제구가 되는 강속구 투수도 줄었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2004년 고교야구 나무배트 도입 이후 홈런은 격감했다. "나무배트는 무게중심이 스팟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근력이나 골격의 힘이 완성되지 않은 타자들이 투수의 공을 이겨내기 힘들다. 때문에 타자들은 플라이 대신 내야 실책을 유발할 수 있는 땅볼을 치기 위해 배트를 짧게 잡고 끊어 치기 타법인 다운 스윙 궤적을 가진 타자가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나무 배트 사용 이후 툭 건드리고 1루까지 빠르게 뛸 수 있는 우투좌타가 늘고, 오른손 거포가 줄었다.
반면, 스위트 스팟이 분산돼 있는 금속 배트 대신 나무 배트를 상대하게 된 투수들은 변화구를 통해 나무 배트의 스팟을 피해가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고교 무대에서 변화구 구사가 늘어난 이유다. 빠른 공을 던지는 초 고교급 투수들의 성장도 지체됐다. 나무 배트를 쓰는 타자가 빠른 공을 이겨내지 못하니 굳이 코너에 꽉 차게 제구할 필요성이 줄었다. 정교하게 제구된 빠른 공을 발전시킬 환경이 사라진 셈이다. 천적이 사라진 환경에 놓인 맹수는 게을러질 수 밖에 없다. 저변이 약한 한국이 그나마 자랑하던, 국제대회마다 짜릿한 기적을 연출하던 엘리트 선수들의 경쟁력 마저 약화되고 있다.
참고로 일본 고교 리그는 여전히 국내에서 금속 배트를 선택해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타자도 살리고, 투수도 살릴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잘못된 현상유지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이대로라면 일본과의 야구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공산이 크다. 한국야구의 현재는 위기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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