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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홈런왕에게 삼진은 전쟁을 이긴 장수의 상처와도 같다. 큰 것 한 방을 날리려면 삼진은 감수해야 한다. 홈런왕 치고 삼진이 적은 타자는 없다. 선구안이 좋다던 이승엽도 통산 타석수와 삼진 비율이 6.15로 KBO리그 전체 평균 6.54보다 낮았다. 1990년대 홈런왕 장중훈은 5.45였다. 이 수치는 작을수록 삼진을 자주 당했다는 뜻이다.
역대 한 시즌 최다 삼진 기록은 2000년 현대 유니콘스 외국인 타자 톰 퀸란이 세운 173개다. 퀸란은 그해 정규시즌서 타율 2할3푼6리, 37홈런, 91타점을 올린 뒤 한국시리즈 MVP을 차지했다. 전형적인 '모 아니면 도' 유형의 타자였다.
팀이 치른 경기수를 기준으로 이들의 예상 홈런수를 계산해봤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할 경우 32경기를 치른 박병호는 198개, 31경기를 치른 김재환은 195개, 31경기를 치른 나성범은 181개의 삼진을 당하게 된다. 산술적으로는 이들 모두 퀸란의 한 시즌 최다 기록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다만 나성범과 김재환의 삼진 페이스는 크게 걱정할 게 못된다. 나성범은 타율 3할2푼8리, 10홈런, 28타점, OPS 1.061로 중심타자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연속 세 자릿수 삼진을 당하면서도 꾸준히 3할대 타율과 22개 이상의 홈런, 91개 이상의 타점을 올렸다. 삼진이 많아도 흠이 안되는 대표적인 타자다.
김재환도 타율 2할6푼1리, 7홈런, 29타점을 기록하며 4번타자로 제 몫을 수행중이다. 홈런 공동 6위, 타점 공동 4위다. 타율이 낮기는 하지만, 클러치 능력은 정상급이다. 주자 없을 때 타율이 1할9푼6리로 나쁠 뿐이지, 주자가 있을 때는 3할4리, 득점권에서는 3할2푼4리를 때렸다. 김재환은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134개의 삼진을 당했던 2018년 타율 3할3푼4리, 44홈런, 133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홈런-타점왕을 거머쥐고 MVP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 시즌 박병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박병호는 타율 2할2리(109타수 22안타)가 말해주듯, 시즌 초 타격감이 바닥권이다. 규정타석을 넘긴 타자 60명 가운데 타율 꼴찌다. 32경기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경기에서 안타를 치지 못했다. 지난 10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까지 최근 5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 선구안이 크게 떨어졌고, 타격 밸런스도 무너진 상태다. 유인구에 잘 속으니 삼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박병호의 홈런수는 6개로 이 부문 1위인 LG 트윈스 로베르토 라모스(12개)의 절반 밖에 안된다. 타점 부문서도 17개로 공동 29에 처져 있다. 주자가 있을 때의 타율은 1할9푼7리로 더 못 친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는 꾸준히 4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하고 있다. 키움 손 혁 감독은 최근 박병호에 대해 "몸 상태는 이상이 없다. 지금은 일단 믿고 계속 내보낼 생각"이라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 본인의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그럴수록 박수를 쳐주고 있다"고 했다.
박병호의 한 시즌 최다 삼진 기록은 2015년의 161개다. 당시 32경기를 치른 시점의 삼진수는 33개로 올해보다 11개가 적었다. 박병호는 그해 타율 3할4푼3리에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기록인 53홈런, 146타점을 때렸다. 올해 200삼진을 당할지언정 홈런타자로 정상 궤도에 오른다면 아무런 문제가 안되지만, 지금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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