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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2루수' 정근우 은퇴...KBO 중흥기를 이끌다

기사입력 2020-11-08 17:05


5일 잠실야구장에서 LG와 두산의 준PO 2차전 경기가 열린다. 경기 전 LG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정근우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용택.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0.11.05/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또 한 명의 82년생 엘리트 세대가 유니폼을 벗었다.

LG 트윈스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근우 선수가 16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정근우는 전날 차명석 단장과 면담을 갖고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방출이 아닌 은퇴를 선택함으로써 현역 연장 미련을 깨끗하게 던져버렸다.

지난달 은퇴를 발표한 한화 이글스 김태균에 이어 1982년생 프로야구 선수의 잇달은 퇴단이다. 김태균과 마찬가지로 정근우도 나이에 따른 기량적 한계, 활용 가치에 대한 구단들의 의구심을 은퇴의 배경으로 삼았다. KBO리그를 대표하며 국가대표로도 이름을 떨친 82년생 엘리트 집단 가운데 현역 연장이 가능한 선수로는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와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 정도만 남게 됐다.

정근우는 "그동안 앞만 보고 힘들게만 달려와서 당분간 쉬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신 구단에 감사하고 그 덕분에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항상 응원해주시고 아껴주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정근우는 다부진 승부근성과 허슬플레이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전성기에는 40~50개의 도루를 거뜬히 할 정도로 기동력이 뛰어났고, 2루 수비 실력은 항상 최정상급이었다. 2019년 말 LG가 2차 드래프트에서 정근우를 선택한 것은 이런 수비 실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근우는 올시즌 시간이 흐를수록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공수에 걸쳐 기대 만큼의 실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반기에는 정주현에 밀려 대타, 대수비 전담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포스트시즌서는 키움 히어로즈와의 와일드카드에 교체 멤버로 출전한 게 전부다. 정규시즌 성적은 72경기에서 타율 2할4푼(154타수 37안타), 1홈런, 14타점, 23득점.

정근우는 2005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2차 1라운드 7순위 지명을 받고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그의 전성기는 입단 2년째인 2006년 시작돼 한화 이글스 시절인 2018년까지 이어졌다. SK 소속으로 2007년과 2008년, 2010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2루수로 세 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공수주 실력을 두루 갖춘 최정상 2루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였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니다.

덕분에 정근우는 생애 동안 두 번의 FA 권리를 행사하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다. 2013년 말 SK를 떠나 한화 이글스와 4년 70억원에 계약했고, 4년 뒤인 2017년 말 한화와 '2+1년' 35억원에 재계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5년 2월 당시 한화 김성근 감독은 일본 고치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정근우가 더블플레이를 하다 공에 턱을 맞아 골절상을 입고 이탈하자 "전력의 50%가 날아갔다"며 깊은 상실감을 드러낸 바 있다. 10년 넘게 정상에서 KBO리그를 이끌던 정근우는 2018년 후반기부터 하락세를 나타내며 포지션을 외야로 옮기는 등 주전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지난해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의 보호선수 명단서 제외되는 처지를 맞았다.

정근우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비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년 WBSC 프리미어12 우승 등에 기여하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관중 500만명을 넘어선 2008년부터 중흥기를 맞을 수 있었던 건 정근우를 중심으로 한 대표팀 세대들의 활약이 밑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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