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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진회 기자] 11년 만에 펼친 날개였다.
본격적으로 1군 불펜에서 날개를 편 건 지난해였다. 무려 58경기에 투입돼 54이닝을 소화하면서 평균자책점 3.33,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올해도 전반기까지 불펜으로 나름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다 후반기부터 1군에서 사라졌다.
3개월 뒤 들려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현역 은퇴'였다. 한화는 지난달 14일 김진영의 웨이버 공시를 발표했다. 야구인, 구단과 미디어 관계자 모두가 의아한 상황에서 구단이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은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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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은 이글스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몸 상태 이상징후에 대해 먼저 밝혔다. 그는 "결과가 좋지 못한 경기를 하게 되면 보다 나은 경기력을 위해 몸을 생각하지 않고 조금 무리했던 것 같다. 시즌을 치러나가면서 몸이 어떤 상황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어떻게해서든 반전이 있어야 된다는 일념 하나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시즌 초반 광주 KIA전에서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인생에 있어 쉽지 않은 경험을 했다. 구단의 배려를 통해 재활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몸을 추스렸다. 실신까지 가게 된 검사들도 충분하게 했다. 아무래도 시즌 초반이었고 얼른 합류해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2군에 자진해서 내려가기 3경기 전부터였던 것 같다. 마운드 위에서 몸의 이상반응을 느꼈다. 포수 (최)재훈이 형이 위아래로 겹쳐 보이는 무서운 경험을 했다. 버티기가 힘들었다. 지금 상태로 1군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 나한테도 물론이고 팀에 도움이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이후 정밀검사를 받고 또 다시 긴 터널 같은 경험을 했다. 그 때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좋아지길 노력했다"고 말했다.
헌데 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다가왔다. 김진영은 "그런 와중에 내 가족이 아프다는 얘기를 전달받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오히려 더 솔직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빨리 복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아버지가 큰 병을 가지고 계셨을 때도 희망을 드리기 위해 노력해서 한화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피치 못하게 내 가족을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는 정답은 어떠한 선수들이라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정말 구단의 모든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모든 일들이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며 "다시는 한화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서 공을 못던질 수 있다는 아쉬움은 분명 크지만, 가족의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그 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마지막으로 김진영은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하루에 수십번 생각했던 것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의 길과 다르다고 해서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나의 봄을 다른 사람들의 겨울에 맞추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출발점과 결승점이 다르다. 분명한 건 목적이 없는 삶을 살면 많은 것들이 우연에 그칠 것이고, 목적이 분명하게 있는 삶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숙명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제야 비로소 출발점에서 워밍업을 끝내고 인생에 있어 출발을 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다. 더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내가 원하고자 한 위치에 다시 웃으면서 내 삶의 비전을 위해 노력하지 삶을 살지 않을까. 절대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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