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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투수가 없어 걱정이 돼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야구는 투수놀음. 프로야구 롯데 출신 박정준 코치의 체계적 지도 속에 무장한 물금고 타선은 이번 대회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거두며 강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선발투수는 장신 우완 이승헌. 하지만 뒤를 맡길 투수가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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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좌완 박성훈을 올렸다. 하지만 1사 후 볼넷, 3루수 실책, 볼넷으로 만루가 됐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준호 감독은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2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던 좌완 박관우를 마운드에 올렸다. 경북고 유니폼을 입고 처음 서보는 마운드. 우려는 현실이 되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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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선은 상위타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감독은 뚝심 있게 '초보투수' 박관우 카드를 밀어붙였다. 볼넷 후 정신을 번쩍 차렸다. 2번 강도경을 허를 찌르는 몸쪽 빠른 공으로 루킹삼진, 3번 고승현을 뜬공 처리하고 위기를 넘겼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박관우는 1사 후 김우성에게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후속타자를 병살 처리하고 세이브를 거두며 우승 세리머니 투수가 됐다.
경기 후 이준호 감독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박)관우는 투수를 하고 싶어했는데 체격이 크지 않아(1m75,79㎏) 제가 안 시켰어요. 어제 결승전을 준비하면서 혹시나 싶어 연습투구를 시켰는데 공이 괜찮더라고요."
결승전, 최대 위기에 생초짜 투수를 올린 이준호 감독이나 그 부담을 세이브로 바꾼 박관우 모두 대단한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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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오기 전에 물금고랑 연습경기를 했는데 우리가 10점 차 이상으로 대승을 했어요. 아이들한테 연습경기 한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하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결승전이라 부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투수 고민 속 한숨도 못잔 이 감독은 "오늘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비로소 웃었다.
이준호 감독은 경북고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이승엽 두산 감독의 동기동창이다. 2학년 시절 경북고의 1993년 청룡기 마지막 우승을 함께 일군 명 사이드암 투수 출신. 이듬해인 1994년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며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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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첫해부터 날카로운 제구력을 선보이며 불펜 필승조로 맹활약했다. 26경기(선발 2경기) 4승1패 1세이브, 5.0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부상 탓에 이후 9경기를 더 던진 후 은퇴 했다.
이준호 감독은 이승엽 감독과의 30년전 우승 추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에 학생들도 버스 20대로 나눠 타고 총출동했어요. 야구장이 가득찰 정도였지요. 저는 당시 큰 활약을 못했지만 승엽이가 잘 던져주고 해서 군산상고에 7대3으로 이겼던 기억이 나요. "
여전히 이승엽 감독과 편하게 통화하는 사이. 하지만 결승전을 앞두고는 전화를 자제했다.
"승엽이가 11연승 기간 중이어서 부담스러웠고, 승엽이도 저한테 결승을 앞두고 부담 주는 것 같아 전화를 못한 것 같아요. 이따 연락해보겠습니다."
27일 잠실 롯데전에 앞서 모교의 30년 만의 우승이라는 기쁜 소식을 접한 이승엽 감독은 "역시 전통은 어디 가지 않는다. 정말 오래 걸렸다. 30년 만에 우승이라니 자랑스럽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경북고 야구가 사그라진 게 사실인데 이번 계기로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승은 한 번 할 때 계속 쭉 해야 한다. 다음 대회도 우승하면 좋겠다"며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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