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 주인공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KT로 이적해, 이틀 연속 멀티히트를 터뜨린 이정훈이었다. 롯데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다, KT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4번타자 자리까지 꿰차며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선수. 이날 이정훈은 인터뷰를 마친 후 "할 말이 더 있다"며 돌아서는 취재진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정훈은 "롯데 2군에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문규현 코치님, 이병규 코치님이 정말 많이 챙겨주셨다. 그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15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의 경기. 1회초 2사 2루 KT 이정훈이 투런포를 날린 뒤 환호하고 있다. 대구=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5.06.15/
진심 가득 담긴 한마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선수들은 통상 이적 후 전 소속팀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 새 팀 코칭스태프에 감사 인사를 하기 바쁘다. 그런데 왜 이정훈은 2군에서 함께 했던 전 소속팀 코치들을 언급했을까.
롯데팬들은 요즘 행복하다. 야구를 잘한다. 주중 선두 한화 이글스에 위닝시리즈를 거두더니, 삼성 라이온즈까지 잡으며 3연승을 달렸다. 선두 한화와 2경기, 2위 LG 트윈스와 1경기 차 단독 3위.
1군 전력 만으로 잘하는 게 아니다. 뎁스가 두툼해졌다.
야수진에 윤동희, 나승엽, 황성빈 등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빠졌다. 선발진도 박세웅, 김진욱, 나균안이 부진으로 모두 2군을 들락날락 하거나 보직이 바뀌었다. 하위권으로 처져도 이해가 가는 상황인데, 잇몸으로 잘 버티는 걸 넘어 새 얼굴이 끈기와 투혼의 야구를 해버리니 만족스러운 성적에 보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1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롯데-KT전. 6회초 1사 장두성이 안타를 친 후 기뻐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6.12/
황성빈이 빠진 자리에는 장두성이 나타나 스타가 됐다. 장두성도 불의의 부상으로 빠졌는데, 그 자리를 김동혁이 메웠다. 20일 삼성전에는 중견수 포지션에 신인 한승현이라는 선수가 나타나 호수비로 팀을 구했다. 한화 6연승을 저지한 경기에서는 신인 포수 박재엽이 공-수 영웅이 됐다. 손호영까지 부상으로 빠져 골치가 아플듯 했지만, 한태양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방망이를 휘두른다. 독립구단에서 영입한 육성선수 박찬형은 1군 첫 타석에서 150km 초구를 받아쳐 안타를 쳤다.
김태형 감독의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백업이었던 선수들, 내가 보지 못했던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2군 김용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준비를 잘 시켜준 덕"이라며 음지에서 고생하는 2군 코칭스태프들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9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롯데의 경기, 7회말 2사 1루 롯데 박찬형이 안타를 치고 기뻐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6.19/
음지에서 올라온 선수들 입에서는 어김 없이 두명의 코치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프로 첫 안타 영광의 박찬형은 "퓨처스에서 문규현 코치님이 1군에 가려면 수비, 주루 부분에서 탄탄해야 한다고 하셨다. 기본기부터 다졌던 것이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병규 코치님은 타격 타이밍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늘 타석에서도 직구에 타이밍이 늦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두 코치에 공을 돌렸다.
새로운 스타 박재엽도 "2군에서 이병규 코치님, 문규현 코치님, 박정현 코치님과 투수 코치님들 전부 너무 잘해주셔서, 내가 주눅들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1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롯데의 경기, 6회말 롯데 박재엽이 안타를 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6.18/
내야의 활력소 한태양은 "문규현 코치님과 매일 얼리조로 수비 훈련을 했다. 1군 적응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외야의 에너자이저 김동혁은 "이병규 코치님이랑 타격 타이밍에 대해서 얘길 많이 나눴다. 잘 적응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2군 코치는 무척 힘들다. 낮 시간 동안 땡볕에서 훈련하고 경기한다.
물리적 고충보다 더 많이 힘든 건 관심이 크게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명감을 갖지 않으면 대충 하루를 때우는 식으로 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83년생 두 동갑내기 코치의 목표는 오직 하나, '1군에 필요한 선수를 만들어보자'는 일념 뿐이다. 이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과 부대끼며 구슬땀을 흘린다.
1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롯데의 경기, 4회말 2사 1,3루 롯데 김동혁이 2타점 3루타를 치고 환호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6.18/
문 코치는 2군 수비 파트를 맡고 있다. 서튼 감독 시절 1군 수석코치까지 역임했다. 이 코치는 타격 전문가다.
두 지도자는 연일 이어지는 선수들의 '샤라웃(존경과 감사의 표현)'에 몸둘 바를 몰랐다.
문규현 코치는 "김용희 감독님부터, 여기 계시는 모든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위해 밤낮 없이 애쓰시는 건 똑같다"면서 "어린 나이에 수석코치 경험을 하다보니, 선수 특성에 따라 어떤 부분을 어필해야 1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가 보이더라. 내 파트가 수비다 보니, 일단 수비와 주루 등 기본 플레이를 잘해야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늘 얘기해준다"고 강조했다.
이병규 코치 역시 "기술도 중요하지만, 2군에 있는 선수들에게는 내가 처한 상황 등을 정확하게 인지시켜주고 프로 선수로서 해야할 행동과 의무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얘기를 해준다"고 자신의 지도 철학을 설명했다.
19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롯데의 경기, 2회말 롯데 한태양이 2루타를 치고 기뻐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6.19/
그러면서도 두 젊은 지도자는 한 목소리로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한가 보다. 선수들이 1군에 올라가 잘하고, 이렇게 얘기를 해줄 때 코치 생활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아직 우리 롯데에는 터질 선수들이 더 많다. 김동혁, 박찬형 외에도 이태경, 김세민, 김동현, 한승현 등이 충분히 1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들"이라고 소개했다.
문 코치는 마지막으로 "퓨처스 육성팀에게도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이 분들이 안계셨다면 2군 선수들은 해외 전지훈련도 못 가고, 동기부여가 안됐을 것이다. 1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처럼 지원해주신다. 이 분들이 있기에 '상동 자이언츠'가 빛날 수 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롯데는 올해 2군 선수단도 1군이 있던 대만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돈 쓴 효과는 분명히 있다. 프런트의 지원 속에 현장도 힘을 얻는다는 것이 문 코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