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나는 이정후가 주저앉은 줄 알았다."
처음 이정후의 글러브에 들어온 것 같았던 타구는 이내 튀어 올랐다. 이정후는 필사적으로 공을 받으려고 했고, 타구는 이정후의 가슴부터 시작해 몸을 타고 흘러 내려가 무릎 사이에 꽂혔다. 양 무릎으로 잡은 중견수 뜬공이었다.
이정후는 무릎으로 잡은 공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잠시 무릎을 꿇고 그라운드에 엎드린 자세로 있었다. 여기서 샌프란시스코 벤치의 오해가 생겼다.
이정후는 몸에 조금도 이상이 없었다. 이정후는 무릎에 공을 낀 채로 일어나 그제야 공을 꺼내 보이며 '내가 잡았다'고 경기장에 있는 모두에게 증명했다.
당연히 타구를 놓칠 것이라 예상했던 미국 현지 중계진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무릎으로 잡았다!"고 소리친 뒤 "10년짜리 수비다. 하루, 한 주, 한 달, 한 시즌에 한 번 나오는 게 아니라 1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수비"라고 극찬했다.
MLB.com은 '정후 리(LEE)' 대신 '정후 니(KNEE)'로 표기하며 기묘한 수비에 주목했다.
|
|
이정후가 무릎으로 포구하는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전부 지켜본 우익수 드류 길버트는 "진짜 완전 미쳤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수훈 선수에게서 나온 결정적 플레이였다"고 감탄했다.
물론 모두가 웃을 수는 없었다.
장타를 도둑맞은 디아스는 "나는 200% 2루타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정후가 잡았으니 불운했다. 내 생각에 이정후는 그런 수비를 한 유일한 선수 같다. 정말 특이한 플레이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멜빈 감독은 건강한 이정후의 몸 상태에 안도했다.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 수비 과정에서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37경기 밖에 뛰지 못하고 시즌을 접었기 때문.
이정후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 달러(약 1564억원) 대형 계약을 한 핵심 선수다. 시즌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이지만, 이정후가 이탈하면 샌프란시스코 전력에 큰 타격을 입는다.
이정후는 올해 118경기에서 타율 0.260(443타수 115안타), 6홈런, 46타점, OPS 0.733을 기록했다. 2루타 28개, 3루타 10개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 대비 장타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시즌 중반 타격 슬럼프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도 8월 들어 타율 0.339(56타수 19안타)를 기록하면서 조금 살아난 모양새다. 최근 6경기 안타 행진도 이어 오고 있다.
이정후의 이날 수비가 아주 안정적인 수비라기 보다는 기묘한 수비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메이저리그 관련 SNS를 전부 도배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무릎으로 타구를 낚아채는 것도 운동 재능이라면 재능이기 때문. 이정후가 활약한 날 샌프란시스코는 7대1로 대승했다.
|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