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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포스트시즌은 페넌트레이스 보다 어렵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 먼저 힘을 빼고, 먼저 용기를 내는 쪽이 승리 확률이 높다.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을 믿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 한 스푼이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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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가을야구 첫 승. 큰 실패를 극복한 반전 드라마 속에 감동의 스토리가 담겼다.
최원태은 가을야구 부진의 아이콘이었다. 시즌 때 괜찮다가도 가을만 되면 작아졌다. 울렁증일 수도, 징크스일 수도 있었던 부정적 결과 속 어느덧 가을계륵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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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후라도, 원태인, 가라비토를 모두 소모한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택은 불가피 하게 최원태였다.
큰 기대도 없었다. 여차하면 바로 불펜투수를 투입할 요량이었다.
SSG 랜더스 타선에는 1회부터 '천적' 박성한 안상현 에레디아 한유섬이 지뢰처럼 1~4번에 배치돼 있었다.
불안한 시선 속 마운드에 오른 최원태는 놀라운 차이를 만들었다.
자신의 공을 믿었고, 리그 최고 베테랑 포수 강민호의 사인을 믿었다. "형이 사인을 잘 내줬다. 고개 안 흔들고 던졌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말이 첫 소감. 가운데로 유도하는 포수의 미트를 보고 구속 욕심 없이 힘 빼고 던지다 보니 코너워크가 됐다. 포심, 투심, 체인지업, 슬라이더 방향성이 다른 4구종을 균형 있게 섞어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랜더스 타선을 무력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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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소속이던 최원태는 인천에서 열린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 끝내기 역전 홈런을 허용했다.
4-2로 앞선 9회말 세이브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가 볼넷과 안타로 주자를 쌓은 뒤 SSG 랜더스 김강민에게 끝내기 역전 스리런 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궜다.
4차전까지 2승2패로 팽팽하던 두 팀. 이 끝내기 홈런 한방으로 시리즈가 기울었고, 결국 키움은 다음날 열린 6차전 마저 1점 차로 패하며 잡을 뻔 했던 첫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최원태로선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악몽 같았던 순간. LG로 팀을 옮겨 치른 2023년 한국시리즈 조기강판도 좋지 못한 기억의 연장선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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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이재현의 선두타자 솔로홈런 이후 좋은 찬스가 잇달아 무산된 상황. 초반까지 박빙의 리드 속 피홈런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홈런을 의식하지 않았고요.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려고만 생각했어요. 그냥 맞더라도 존 안에 넣자고 했는데 그게 코너워크가 잘 되면서 잘 막았던 것 같아요."
큰 실패를 했고, 그 트라우마는 팀을 옮겨서까지 이어졌다.
또 다른 새로운 팀 삼성에서도 가을활약은 끝내 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팀으로서나, 개인적으로나 절체절명의 순간, 멋진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이겨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진정한 승리였다. 반전 드라마를 만든 건 바로 한스푼의 용기였다.
6회 2사 1루에서 마지막 타자이자 천적 중 천적 에레디아를 헛스윙 삼진 처리하고 임무를 마친 최원태. 그는 격렬한 세리머니 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주먹만 굳게 쥐며 그동안 마음고생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멋진 리드로 최고의 호투를 도운 강민호 선배를 향해 작은 엄지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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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의 호투는 1승 이상의 여운의 선수단에 남겼다.
절체절명의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스스로를 믿고 한걸음 옮기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스며들었다. 역전 위기의 풀카운트에서 과감한 유인구를 뿌릴 수 있는 용기, 찬스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기 스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두루 심어줬다.
1회 첫 타석 초구를 벼락 같이 돌려 담장을 넘긴 이재현, 8회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변화구 승부로 위기를 벗어난 이호성 등 후배들도 씩씩하게 선배의 용기에 화답했다.
최원태가 깨운 삼성의 진짜 가을야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