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진짜 고마워요 형, 막아줘서, 커피 살게요." "됐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동생을 구한 베테랑 투수의 반응은 담백하고 쿨했다. 커피를 사겠다는 고마움의 표시도 덤덤하게 사양하며 팀의 승리만을 먼저 챙겼다.
부상 시련을 딛고 마운드에 돌아온 삼성 라이온즈의 베테랑 불펜 김태훈이 팀의 역전패 위기를 완벽하게 지워내며 팀의 승리를 지켰다. 동시에 KBO 리그 최초의 대기록인 7년 연속 10홀드를 향한 위대한 도전도 다시 시동을 걸었다.
김태훈은 2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팀이 2-1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6회말 무사 1, 2루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 구원 등판했다.
마운드에 오른 김태훈은 첫 타자 허인서에게 희생번트를 허용하며 1사 2, 3루 역전 위기에 몰렸다. 안타 하나면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아 전세가 뒤집힐 수 있는 순간.
여기서 김태훈의 관록과 각도와 회전수에 변화를 준 '투심 패스트볼'이 빛을 발했다. 후속 타자 이원석을 상대로 143km 높은 투심을 던져 2루 땅볼을 유도했다. 삼성 류지혁이 지체 없이 홈 승부를 감행했고, 3루 주자 강백호를 태그아웃시키며 귀중한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한숨을 돌린 김태훈은 이어 박정현에게 142km 몸쪽 투심을 정교하게 찔러 넣어 다시 한번 3루수 땅볼을 유도, 이닝을 실점 없이 완벽하게 매듭지었다.
김태훈이 지워낸 이닝은 이날 선발로 나서 역투를 펼친 양창섭의 승리 요건(5이닝 6안타 2볼넷 무실점 시즌 5승)을 지켜내는 결정적인 디딤돌이 됐다. 결국 삼성은 양창섭의 박수와 응원 속에 3대1 승리를 거두며 주말 시리즈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김태훈은 경기 후 "2군(퓨처스)에 가 있으면서 투심을 더 좋게 만들려고 팔의 각도를 조금 내리고 회전율을 더 높였다. 팔이 올라오면 밸런스가 안 좋았는데, 이번에 팔을 내리고 던지니 힘들지 않고 밸런스가 좋았다. 투심 연습을 많이 하고 올라온 덕분에 땅볼 유도 확률이 높아졌고, 실전에서도 생각대로 땅볼이 많이 나온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경기 후 마운드를 내려온 김태훈에게 선발 양창섭이 달려와 격하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태훈은 "창섭이가 '진짜 고맙다'고 막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 그게 끝이었다"라며 웃었다. 커피를 사겠다는 동생의 약속에 "됐다"고 쿨하게 답한 일화도 전했다.
김태훈의 2026시즌 전반기는 부상 잔혹사 그 자체였다. 세 차례나 부상자 명단에 오르내리며 1군 무대에 머문 기간은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상황.
김태훈 역시 "몸이 갑자기 저도 모르게 아프다 보니 처음에는 '왜 이러지' 싶었지만 그냥 받아들였다"고 덤덤히 털어놨다. 이어 "다시 몸을 만들면서 캠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다"라며 공백기 동안의 심경을 전했다.
그가 복귀를 서두른 이유는 팀을 향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김태훈은 "팀이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분명히 불펜 과부하가 오고 힘든 시기(34~35경기 소화 시점)가 오기 마련이다. 내가 빨리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라며 베테랑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였다.
김태훈은 키움 히어로즈 시절인 2020년 10홀드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해 온 KBO의 대표적인 마당쇠. 이날 위기를 막아내며 시즌 2번째 홀드를 챙긴 그는 KBO 역사상 최초의 '7년 연속 10홀드'라는 대기록까지 8개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팀도, 개인도 영광의 순간을 함께 맞이할 듯 하다.
그는 "홀드를 의식하고 던진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좋았다. 이제 8개 남았으니 더 힘을 내겠다"며 KBO 최초 기록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팔 각도를 내리고 투심의 날카로움을 더한 베테랑의 가세. 본격적인 여름 승부를 앞두고 살짝 지친 뒷문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든든하고 쿨한 '형님'의 귀환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