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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2경기 연속 승리에 쐐기를 박는 맹타를 휘두르고도 포효하지 못했다. 오히려 땀과 비로 범벅이 된 얼굴에는 기쁨보다 그동안의 모진 세월이 스쳐 지나간 듯 쓸쓸한 그늘이 먼저 드리웠다. 1군 복귀 직후 화려한 부활 극장을 쓴 KT 위즈의 '끝내주는 사나이' 배정대(31)의 이야기다.
배정대는 지난 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 7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으로 활약하며 팀의 7대3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7일) '괴물' 안우진을 상대로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단 이틀 동안 5안타 4타점을 쓸어 담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뿜어냈다.
모처럼의 대활약에도 그가 활짝 웃지 못한 이유, 그 뒤에는 주전 제외과 2군 강등이라는 지독한 마음고생과 정체성의 혼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배정대는 KT 외야의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었다. 2020년(13홈런 65타점), 2021년(12홈런 68타점), 2022년(6홈런 56타점)까지 무려 3년 연속으로 '144경기 전경기 출장'을 달성했던 강철 체력의 대명사였다. 마법사 군단의 외야 중심에는 늘 그가 서 있었다.
균열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2025시즌 99경기에 나서 타율 2할4리로 데뷔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내며 입지가 좁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올 시즌을 앞두고 대형 FA 외야수 최원준이 합류하면서 배정대는 프로 데뷔 후 가장 냉혹하게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야 했다.
올해는 58경기에 출전했지만, 주로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로만 나선 탓에 타석은 단 93타석(86타수 20안타, 타율 2할3푼3리)에 불과했다 사실상 경기 수만 채웠을 뿐 외로운 벤치 신세였다.
한때 붙박이 리드오프이자 해결사로 수원을 누볐던 그였기에 벤치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매 순간이 가시방석이었다. 배정대는 "선수로서 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정체성이 되게 크게 흔들린다"라며 "올 시즌 부족한 점이 많아 백업으로 시작했다. 주전에서 밀려난 후 '내가 과연 어떻게 팀에 도움을 줘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더라. 이전까지는 수비적인 부분, 그거 하나 밖에 제가 팀에 줄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았다"라며 그동안 참아왔던 독한 속내를 털어놨다.
자신의 자리를 꿰찬 후배 최원준의 영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의연함을 유지했다. 배정대는 "원준이가 우리 팀에 뽑히는 걸 보고 '진짜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왔다'고 생각했다"라며 "누가 더 잘해서 내 자리가 밀렸다고 생각하며 원망하지 않는다. 원준이는 원준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라며 흔들림 없는 단단한 마인드셋을 보여주기도 했다..
입지를 잃어가던 배정대는 지난 6월 말, 급기야 1군 엔트리 말소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퓨처스리그로 내려가 11일 동안 자신을 완전히 비워내는 고독한 생활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정대는 욕심을 빼는 '빼기 야구'를 배웠다.
배정대는 "예전에는 더 강한 타구를 만들려고 하는 것에 포커스가 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2군에 내려가서 2군 코치님들, 그리고 유한준 타격코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 욕심을 배제했다. 내가 배트 중심에 공을 잘 맞추지 못하는 타자라는 약점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최대한 중심에 정확히 맞추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배정대는 절박했다. 7일 3안타 2타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8일 경기에서 앞선 두 타석이 마음에 들지 않자, 더그아웃 뒤편 실내 타격 케이지로 달려가 배트를 휘두르며 스윙을 교정했다. 시합 중에 실내 케이지에서 밸런스를 잡고 나온 직후, 거짓말처럼 5회와 7회 연속 적시타가 터져 나왔다.
배정대는 주전 제외라는 시련 앞에서도 남을 탓하는 대신 스스로의 매커니즘을 정밀하게 해부하는 길을 택했다. 주전 중견수 최원준의 허리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를 5안타 대폭발로 잡아챈 것은 운이 아닌, 경기 도중 실내 케이지로 달려갔던 그의 지독한 절실함이 만든 필연이다 하지만 아직 배정대는 배고프다. "올 시즌 거의 80경기 가까이 벤치에서 쉬었던 것 같다. 고작 두 경기 잘했다고 절대 들뜨지 않겠다. 이 타격 감각을 철저하게 유지해서 후반기에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가든 팀 승리에 가장 먼저 도움이 되고 싶다. 내 유일한 목표는 후반기 최대한 많은 경기에 출전해 행복하게 야구하는 것뿐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