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 5월 29일, 삼성 라이온즈는 외국인투수 잭 오러클린(26)과의 2차 연장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 7월16일, 추가 연봉 10만 달러의 조건이었다.
캠프 중 팔꿈치 수술 소견으로 이탈한 맷 매닝의 부상 대체 외국인선수로 3월 라이온즈에 합류한 호주 대표팀 출신 좌완 투수. 당시 시즌 10경기에 선발 등판, 4승2패 평균자책점 3.68의 성적을 기록 중이었다. 최근 6경기 4승1패 평균자책점 2.80로 새 리그 적응을 마친데다, 이 기간 중 5연속 퀄리티스타트(QS)와 최근 4연속 선발승으로 타 팀 정식 외국인투수 못지 않은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6주 단기 계약을 통해 KBO리그 무대를 밟았던 오러클린은 지난 4월말 5월31일까지 첫번째 연장 계약에 사인한 바 있다. 벌써 삼성과의 세번째 단기계약.
당시 실력에 비해 야박해 보이는 쪼개기 연장 계약에 일부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활약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 "왜 정식 계약을 맺어주지 않고 선수 의욕을 꺾느냐"는 동정론을 중심으로 구단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기가 끝난 현재, 삼성 프런트의 이례적인 행보는 KBO 규정의 치밀한 활용 속에 이뤄진 철저히 계산된 후반기 대반격의 빅픽처였다.
삼성은 부상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맷 매닝의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105일 간 '재활 외국인 선수'로 등록을 유지했다. 현행 규정상 원래 외인 매닝이 적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교체 카드를 소모하지 않는 '부상 대체 외인' 신분으로 오러클린과의 계약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삼성은 이렇게 번 시간을 활용해 후반기와 가을야구를 이끌 거물급 외인투수 찾기에 나섰고, 결국 빅리그 32승에 빛나는 현역 메이저리거 크리스 페덱(30) 영입에 성공했다.
삼성은 페덱과의 합의를 마친 뒤인 지난 10일에야 비로소 매닝을 웨이버로, 오러클린을 자유계약선수로 공시했다.
삼성이 당초 오러클린과 끝까지 갈 생각이 없었음은 다른 선발투수들과의 '관리' 차이에서 드러난다.
오러클린은 삼성 주축 선발 투수 중 유일하게 단 한 차례의 엔트리 말소 없이 105일 동안 마운드를 지킨 선수였다. 후라도, 원태인, 최원태, 장찬희 등 오러클린 외 다른 선발들은 후반기 대비를 위해 돌아가며 '열흘 특별 휴식'을 부여받으며 체력을 비축했다. 심지어 부상 회복 차 시즌 초 지각 합류한 원태인에게도 휴식이 주어졌다. 오직 오러클린 만이 휴식 없이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완주했다.
오러클린은 개막 초반 줄부상으로 고심이 컸던 삼성 선발진에 가뭄의 단비였다. 기대 이상의 경기력으로 듬직하게 로테이션을 책임졌다. 막판 2경기에서 지친 기색 속 조기 강판했지만, 이전까지는 등판할 때마다 선발투수의 몫을 다했다.
하지만 삼성의 목표인 우승을 향한 궁극적 동행자가 될 수는 없었다. 삼성에게 필요한 외국인투수는 '후반기 스퍼트와 가을야구에서 확실하게 승리를 따낼 수 있는 1선발급 외인'이었다.
통상 전반기에는 빅리그 거물급 투수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빅리그 로스터 탈락 윤곽이 드러나는 6~7월쯤 돼야 진짜 대어가 매물로 나오기 마련.
삼성 프런트는 인내심을 가지고 후반기 이적 시장에 포커스를 맞췄고, 그 사이 오러클린이 훌륭하게 버텨주면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오러클린이 마운드를 지키는 105일 동안, 삼성 스카우트 팀은 교체 카드를 유지한 채 미국 시장을 샅샅이 뒤지며 후반기를 책임질 특급 외인 물색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러클린의 두 차례 연장 계약과 '노 브레이크' 완주는 선수에게는 다소 가혹했을지 몰라도, 구단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오러클린은 기대 이상의 프로페셔널함으로 자기 몫을 100% 완수했고, 삼성은 지친 오러클린의 손을 놓고, 가장 중요한 후반기 승부처에서 최고의 빅네임 투수를 영입하며 우승 선발진을 완성했다.
가을야구 그 이상을 바라보는 삼성 구단의 치밀한 계획 속에 던져진 승부수. 프런트의 냉철한 실리주의가 올 가을 과연 해피엔드를 맞게 될까. 결과를 떠나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