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사실 피할 수 있었는데…생각보다 공이 빨라 아팠다."
어쩌면 KBO 역사상 최초. 시구를 '제대로' 몸에 맞은 남자가 탄생했다.
KT 위즈 최원준이 그 주인공이다. 최원준은 16일 후반기 첫 경기였던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2회초 결승 3점포를 쏘아올리며 4대3,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만난 최원준은 "사실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하지원 배우님을 너무 좋아했다. 전에 (김)도영이가 아이돌분 시구 때 '맞고 책임지라고 할까?' 그런 농담을 했었다"면서 "난 이제 결혼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지만, 한번 맞아볼까 싶었는데 진짜 나한테 날아오더라. 생각보다 공이 빨랐다. 맞고 보니 아프더라"고 역사적인 순간을 돌아봤다.
최원준은 1997년생, 하지원은 1978년생이다. 하지만 뜨거운 팬심은 19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오는 8월 '딸바보'를 예약한 유부남의 가슴에도 뜨거운 불을 지폈다.
'어떤 작품을 좋아했나'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시크릿 가든' '다모' '발리에서 생긴일' '황진이' 등의 작품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쳐갈 무렵. 최원준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7광구를 좋아해서 여러번 봤다. 완전 어릴 때라서, 하지원 배우님 얼굴만 본 게 아닐까. 초등학생 때 그런 기억이 있다."
최원준은 하지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사실 시구하시기 직전에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팬이라는 말을 못했다. 사전에 짠 건 아니다"라며 "'아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이날 최원준의 홈런은 시즌 8호. 커리어하이인 9개를 넘어 생애 첫 두자릿수 홈런이 머지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 하다보면 시즌 끝날 때는 10개를 넘기지 않았을까. 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라고 돌아봤다. 기록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올해는 순위표, 기록표도 거의 안 본다고.
"톨허스트를 처음 상대하는 거라, 첫 타석엔 어려움(삼진)이 있었다. 두번째 타석에선 이미 공을 여러개 봤기 때문에 초구부터 노림수를 가져간게 홈런이 됐다. 전엔 참 예민한 성격이라 고민도 많고,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빨리 잊고 리셋하는 편이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최원준은 오는 8월 딸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작년에 (부진하면서)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인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또 딸에게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지금부터 연습하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지금 내 기록, 내 숫자가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속 한켠에는 언젠가는 내가 저 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구나 꿈은 꿀수 있는 거니까. 이제 (전처럼)모자에 가족들의 응원 같은 걸 새기고 다니지 않아도 다 기억하고 되새긴다. 잘 안될 때는 레이예스(롯데 자이언츠)나 오스틴(LG 트윈스) 영상도 한번씩 본다. 그렇게 잘 치는 선수들도 정말 터무니없이 칠 때가 있다. 나라고 그런 날이 없겠나."
FA 시즌에 잘하는 선수를 가리켜 'FA 로이드'라고 한다. 4년 48억원에 KT로 이적한 최원준은 계약 첫해 잘하고 있어 '사인로이드'라는 보기드문 이야기가 나온다. 최원준은 "(나도현)단장님이 '고맙다' 한마디 해주실 때마다 너무 좋다. 내가 단장님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라고 강조했다.
후배들도 열심히 챙긴다. 그는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에서 한명한명 얘기하기 어려울 만큼 좋은 형들을 많이 만났다. 야단도 맞고 조언도 들으면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어린 선수들은 나처럼 오래 걸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빨리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권)동진이가 많이 물어본다. 결혼하고 나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나보다. 잘했으면 좋겠다."
잠실=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