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상대가 오스틴이니까, 최대한 어렵게 승부하고자 했다. (고의4구 안하고)승부할까 싶기도 했는데…"
9회말 1사 1,2루. 타석엔 리그 최고의 타자가 서 있다. 당신은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1루가 비어있지 않은데도 거를 것인가.
KT 위즈 박영현의 생각은 단순했다. 최대한 어렵게 승부했다. 그러다보니 연속 볼이 나왔고, 폭투로 이어졌다. 1사 1,2루는 1사 2,3루가 됐고, KT는 고의4구 후 후속타를 끊어내며 승리를 따냈다.
17일 잠실에서 만난 이강철 KT 감독은 "폭투가 나오지 않았다면 오스틴을 거르진 않았을 거다. 이미 1점차에 주자가 둘인데, 주자 하나를 더 내보내는 위험을 감수할 순 없다"고 했다.
제 아무리 컨디션 절정의 오스틴이라 한들, 이쪽도 국내 최고의 마무리로 꼽히는 박영현이다. 올스타 휴식기 동안 푹 쉰 덕분인지, 이날 박영현은 150㎞ 직구를 연사하며 기어코 뒷문을 지켜냈다.
이강철 감독은 "박영현이 다행히 잘 막아줬다. 투구수가 30개를 넘어갔는데도 구위가 상당히 괜찮았다"면서 "올해는 운이 좀 따르는 거 같다. 작년 같으면 벌써 끝내기 맞고 졌을 경기"라며 웃었다.
박영현의 속내는 어떨까. 그는 "매년 시즌전엔 걱정하지만, 막상 시즌을 시작하면 몸상태가 괜찮다. 이번 시즌도 하던대로, 평소처럼 잘 치르고 있다"고 했다.
전날 경기 후 선배 우규민의 축하를 받던 박영현은 갑자기 선배의 어깨를 깨물어 그를 놀라게 했다. 둘만의 세리머니 같은 걸까. 박영현은 "그런 건 아니다"라며 민망해했다.
"경기전에 우규민 선배님을 안마해드리면 이상하게 그날 결과가 좋았다.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루틴 같은 거다. 어젠 좀 고전했으니까, 선배님이 '왜 안하고 갔냐' 하시길래 아쉬워서 깨무는 척을 한 건데, 깜짝 놀라시더라."
오스틴 타석의 폭투는 뭘까. 박영현 역시 "너무 완벽하게 보더라인에 던지려다 나온 폭투일 뿐이다. 지금 최고의 타자니까, 볼넷을 줘도 된다는 마음으로 유인구를 던졌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이어 "폭투 후 벤치에서 고의4구 사인이 나왔다. 욕심은 있었지만 당연한 선택이다. 또 다음 타자가 타격감이 썩 좋지 않아서 할만하다 싶었다. 정면승부를 가져간게 잘 통했다"고 돌아봤다.
6월 이후 16일 경기까지 팀 불펜 평균자책점 꼴찌(6.03)의 굴욕을 겪고 있는 KT, 그래도 박영현은 사실상 유일한 '믿을맨'이다. 마무리투수라는게 늘 힘들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더욱 어깨가 무겁다.
박영현에 앞서 나선 스기모토가 추격의 투런포를 허용, 1점차 힘겨운 상황에서 등판해야했다. 박영현은 "왜 거기서 홈런 맞냐, 너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길 해줬다"며 웃은 뒤 "좋은 코스로 잘 던졌다. 최고의 승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오)지환 선배님이 너무 잘 치셨다. 넘어갈줄은 몰랐을 정도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돌아봤다.
박영현은 "쉽진 않지만, 매년 해온 역할이라서 최대한 잘 버텨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제처럼 좋은 경기도 나왔다"면서 "내가 필승조일 때 (김)재윤이 형 믿고 편하게 던졌던 것처럼, 내 앞의 투수들도 날 믿고 편하게 던져주길 바란다. 그러다보면 잘 풀리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35세이브로 세이브왕에 올랐던 그다. 올해도 18세이브로 3위, 김재윤(23세이브)와의 차이는 크지 않다.
하지만 9월에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야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박영현은 "굉장히 만족스런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이 만족감을 시즌 끝까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함께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오원석의 부진에 대해선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앞으로 더 잘할 거라고 기대한다. 야구는 외로운 스포츠고, 그중에서도 투수는 더하다. 결국 본인이 이겨내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잠실=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