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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의 손은 깁스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얼굴색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베테랑인 만큼 침착했다. "일단 뼈가 붙어야 하는데, 3개월 정도 걸릴 것 같다. 내일 검사를 받고 다음날(25일 화요일) 수술할 것 같다"고 했다. 전날 전자랜드전에서 정영삼의 골밑돌파를 막다, 손목 골절상을 당했다. 모비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었다.
일방적인 경기였다. 초반부터 한 차례의 리드도 내주지 않고,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반면, 모비스는 양동근의 공백이 너무 커 보였다.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세밀한 허점이 많았다.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1쿼터=삼성의 폭풍 4분
경기 시작하자 마자 삼성은 매섭게 몰아쳤다. 문태영의 연속 5득점. 김태술의 깔끔한 미드 레인지 점프슛이 터졌다.
지난 시즌 김태술은 슛 밸런스를 잡기 힘들어했다. 노쇠화에 대한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밸런스로 올라간 미드 레인지 점퍼는 그의 컨디션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신호같았다.
속공 상황에서 임동섭의 3점포와 라틀리프 김준일의 공격이 이어졌다. 모비스 찰스 로드는 전자랜드와의 개막전에 이어 이날도 부진했다. 수비 리더 양동근이 빠지면서 생긴 일시적 수비 조직력의 공백도 있었다.
더욱 큰 공백은 상대가 몰아부칠 때 되받아치는 힘이다. 양동근이 있을 때 상대의 강력한 흐름을 끊어줄 수 있는 수단이 많이 존재했다. 강력한 압박을 펼치거나, 장기인 2대2에 의한 미드 레인지 점퍼로 분위기를 살리는 부분. 하지만 양동근이 빠지면서 상대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다. 지난 2년간 모비스가 가지고 있었던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결국 14-2, 삼성의 리드.
1쿼터 7분까지 모비스는 양동근의 대체카드 이지원이 유일하게 5득점했다. 공격루트가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5분54초를 남기고 로드를 네이트 밀러로 교체했지만, 공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가 나빠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23-8, 삼성이 15점 리드.
모비스는 막판 리듬을 되찾았다. 송창용의 3점슛과 이지원의 돌파와 거기에 따른 공격 리바운드를 찰스 로드가 잡았다. 바스켓 카운트를 얻었다. 결국 23-15, 8점 차 리드로 1쿼터 종료. 삼성은 대체로 시즌 준비가 잘 돼 있었다. 좀 더 리드를 벌릴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하이(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로(골밑 근처)로 뿌리는 패싱력에는 약간의 약점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패스 미스가 약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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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삼성 이상민 감독은 "크레익은 나도 모르겠다. 시즌 시작되면 몸이 올라온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어디서 들어본 말. 모비스 찰스 로드가 유재학 감독에게 했던 멘트였다.
크레익은 확실히 변수였다. 로드와는 180도 달랐다. 로드는 골밑 근처에서 전투력이 전혀 없었다. 쓸데없는 드리블과 미드 레인지 점프슛으로 유 감독의 주름살을 늘게 했다. 반면 크레익은 골밑에서 치열하게 비볐다. 연속 6득점. 결국 5분41초를 남기고 33-18로 또 다시 점수 차를 벌였다.
크레익은 골밑 뿐만 아니라 컷-인 덩크슛과 훅슛, 그리고 스텝 백에 의한 파울 유도로 기량을 뽐냈다. 결국 43-27, 15점 차 삼성 리드. 모비스는 3분 여를 남기고 지역방어로 수비를 전환했지만, 효율성은 없었다. 객관적 전력 차이가 심하게 났던 전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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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실책을 남발했다. 로드의 실책과 송창용의 미스가 겹쳤다. 삼성은 착실하게 라틀리프를 이용,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 김태술의 속공 미드 레인지 점프슛까지 터졌다.
점수 차는 무려 23점 차가 났다.
모비스답지 않은 경기력. 기본적으로 공격 루트가 너무 단순했다. 밀러의 개인기와 함지훈의 포스트 업은 삼성의 높은 골밑에 통하지 않았다. 로드의 포스트 업 역시 효율성이 극히 떨어졌다. 공수의 밸런스가 완전히 깨졌다.
삼성은 속공 상황에서 임동섭이 자신있게 3점슛을 던졌다. 림을 통과했다. 3분16초를 남기고 송창용의 드리블 미스가 나오자, 벤치의 유재학 감독은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 나왔다. 삼성은 3쿼터 막판 신인드래프트 4순위 천기범과 이관희까지 투입하며 여유로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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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가비지 타임이었다. 양동근이 다쳤을 때도 모비스가 어느 정도 버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전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모비스의 끈끈한 모습에 식스맨들의 성장 폭이 커질 것이라는 청신호도 존재했다.
경기 전 유 감독은 "양동근은 3개월 뒤에도 복귀 여부가 불투명하다. 시즌 아웃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종현이 2개월 후 돌아온다. 상무에서 이대성이 1월27일 제대한다. 워낙 성실한 양동근도 3~4개월 후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되면 모비스는 정상전력을 가동할 수 있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티기다.
유 감독은 "(1월 말까지) 승률 4할만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만약, 2월까지 4할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6강 플레이오프 자체를 장담할 수 없다.
올 시즌 판도를 보면 심상치 않다. 약체로 평가되던 SK와 KT의 경기력이 많이 올라왔다. LG도 김종규와 김시래가 정상가동되면 만만치 않은 팀으로 변모될 수 있다. 유 감독은 "상황은 지난 시즌과 다르다"고 했다. 지난 시즌 정상적인 전력을 갖춘 팀이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약점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모비스는 쉽게 승수를 쌓을 수 있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올 시즌은 약간 다른 모습이다. 전력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다. 찰스 로드가 부진한 상황에서 모비스가 자신있게 1승을 거둘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다. 사실 이 부분은 모비스의 정책과도 연관이 있다. 그동안 모비스는 유 감독의 조련 하에 백업 선수들의 기량향상을 이끌었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는 방식이었다. 전력 보강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함지훈 뿐만 아니라 이대성 송창용 전준범 이지원 등은 효율적 드래프트를 통해 뽑은 선수.
매년 빠져 나가는 전력은 있지만, FA를 통해 팀에 필요한 선수를 데려오지 못했다. 3연속 우승에도 모비스의 샐러리 캡은 항상 여유가 있었다. 올 시즌 이종현까지 뽑았지만, 백업진의 부족함은 여전하다. 지난 시즌 4강 오리온에게 3전전패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모비스 구단의 인색한 투자가 만든 부작용이었다. 결국 핵심 양동근이 의외의 부상을 당하자, 대체할 수 있는 카드는 전무했다. 지난 시즌 김종근은 FA로 KGC에게 내줬다. 양동근 함지훈이 버티고 있는 모비스는 '리빌딩'이 아닌, '리툴링'을 해야 하는 팀이다.
물론, 주전들이 모두 가동될 경우, 단기전에서 최고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올 시즌 또 하나의 강력한 관전 포인트가 됐다. 잠실=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