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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비잔틴 제국의 멸망을 다룬 역사서 '술탄과 황제, 1453년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 세계사를 바꾼 리더십의 격돌'을 내 화제가 됐다. 최근 개정판을 낸 김 전 의장은 정계를 떠난 뒤 오랫동안 탐구해왔던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순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함락된 역사적인 사건을 책으로 펴냈다. 60년 넘게 농구와 함께 해 온 김영기 KBL 총재(80)가 팔순에 여행서를 냈다고 했을 때, 불쑥 '술탄과 황제'가 떠올랐다. 역사서와 여행서, 성격이 크게 다른데, 전문 분야가 아닌 관심 분야를 다뤘다는 점에서 닮았다.
농구국가대표 선수, 국가대표팀 감독, 신용보증기금 전무, 신보캐피탈 사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KBL(한국농구연맹) 총재. 농구와 스포츠 행정, 금융기관을 넘나들며 김 총재가 거친 직함이다. 김 총재는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대표팀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2004년 총재에서 물러난 김 총재는 지난 2014년 7월 두 번째로 KBL 수장이 됐다.
최근 서울 신사동 KBL 센터에서 만난 김 총재를 만나 여행과 남자 프로농구 현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김 총재는 "운동선수들이 해외에 많이 나가지만 여행다운 여행을 못하는데, 이번에 낸 책이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다. 모든 걸 알아서 해야하는 자유여행은 패키지와 달리 스포츠처럼 모험적인 요소가 있어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또 급격하게 위상이 추락한 남자농구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변화를 역설했다.
-최근 교체 외국인 선수 문제로 시끄러웠죠. 일시 대체선수 리틀, 블레이클리가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른 팀에서 가승인 신청을 해 논란이 됐습니다. 울산 모비스에서 뛰었던 블레이클리는 KGC가 가승인 신청을 했지만, 거부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제도에 모순이 있어. 구단들이 페어 플레이를 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그런거지. 예전에도 선수가 양다리를 걸친다든가 그런 경우가 있었지. 시즌 중에 고치기는 어렵지만 다음 시즌에 제도를 손을 봐야지.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데려올 선수가 없는 거야. 오픈을 해야 해요.
-트라이아웃을 버리고 자유계약제로 가자는 건가요.
왜 다른 나라는 그렇게 하는데, 우리는 못하죠? 중국, 일본, 필리핀 다 하잖아. 전 세계에서 트라이아웃으로 선수 뽑는 건 우리뿐입니다. 감독들이 겁을 내는 거야. 온 사람(트라이아웃 참가자) 중에서 고르면 책임이 덜 하니까. 자유계약제로 하고 금액 상한선을 일정 수준으로 올려 자유롭게 뽑아야지. 외국인 선수보다 국내 선수 연봉이 높은데는 우리뿐이야. 자유계약제를 하면 코칭스태프 역량, 안목, 능력이 드러나겠지. 매년 미국에서 선수 1000명이 쏟아지는데, 갈 데가 없어요. 반드시 돈으로만 뽑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중에 '옥'이 정말 많아요. 60명 정도가 NBA로 가고, 다음으로 유럽으로 가는데, 전부 소화가 안돼요. 우리는 오는 선수만 계속 오잖아. 트라이아웃을 하면 자원이 너무 없다고. 대체 선수로 데려올 선수가 없다보니, 다툼이 생기는 거지.(KBL은 트라이아웃 참가선수 중에서 선발을 하고, 교체 선수도 이 중에서 뽑아야 한다)
-자유계약으로 가면 재정이 허약한 팀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요. 이렇게 되면 구단 운영을 포기하는 데가 나올 수도 있다고 걱정합니다.
지금은 대기업부터 위기감이 있어요. 불필요하게 규정 어겨가면서 많은 돈을 쓰긴 어렵다고 봐요. 자유계약제로 하더라도 얼마든지 공정한 틀을 만들 수 있어. 배구쪽이 비용 줄인다고 트라이아웃으로 바꿨는데, 그쪽은 자원이 없어 그런거고. 농구는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요.
-야심차게 도입한 단신 외국인 선수 제도는 성공이라고 보시나요. 조 잭슨 같은 선수도 나왔지만 대부분이 맥키네스(동부)같은 언더사이즈 빅맨을 찾고 있습니다.
큰 선수와 작은 선수가 있는데, 작은 선수 기준을 더 줄였으면 해요. 단신은 1m85(현재 1m93이 장단신을 가르는 기준)로 낮췄으면 좋겠어. 좋은 단신 선수가 많이 오면, 우리 선수들이 많이 배울 수 있어요. 키 큰 선수들은 다른 리그로 가기 어려운 선수들이야. 기술도 없고, 힘만 있다고. 작은 선수는 NBA(미국프로농구) 선수와 기술이 비슷해요. 키가 작아서 NBA에 못갈뿐이지. 예전에 단신 자원은 우리도 많다고, 장신 외국인 선수만 둘을 썼지. 그때는 우리 선수들에게 3점슛밖에 없었어. 국내 농구의 경쟁 상대는 야구, 축구가 아니라, NBA야. 팬들이 NBA 보면서 비교를 한다고. 돈으로 수준을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어요. 에밋같은 선수 보면 작지만 기술이 엄청나잖아. 우리 농구가 야구, 축구에 밀려 힘든 게 아니라고 봐요. 팬들이 야구, 축구를 보는 건, 세계 수준에 있는 종목이라 그런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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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구가 재미있어지려면 외국인 선수는 빠르고 기술좋은 단신, 센터는 우리 선수가 맡으면 됩니다. 국내에 2m 넘는 좋은 센터자원이 많아요. 단장들은 이런 취지에 공감을 하는데, 감독들로 내려가면 이해관계 때문에 잘 안되더라고. 키 큰 국내 선수 있는 팀은 찬성하는데, 다른 팀은 반대를 해. 멀리 못 보고 당장 승부에 집착해서 그런거라고. 포브스가 조사한 걸 보면, 우리나라 4대 스포츠 다 합쳐도 레알 마드리드 하나보다 구단 가치가 못해요. 귀화정책도 쓰고, 작은 선수 데려와 경쟁하면서 스타도 만들고 그래야 해요.
-정도 이상으로 개방하면 국내 농구가 위축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애국적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안 돼요. 피자가게를 냈으면 피자의 품질이 좋아야지. 옆집보다 질이 낮으면 경쟁이 안됩니다. 개방을 해야 격차를 줄일 수 있어요. 귀화, 혼혈선수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시대라고. 우리는 등록 선수가 2000명인데, 중국은 1억명이야. 다행히 생활체육이 합쳐져 2만5000명이 들어왔어. 잘 하는 선수가 건너올 수 있게 됐어요. NBA 수준은 못 되더라도 수준을 높여야 해요. 스페인 사람들은 호날두를 포르투갈 인이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 생각해. 개방하더라도, 국내 선수는 몇명 이상 뛰게 하면 되는데. 외국인 선수를 1명(현재 2명)으로 줄이자는 얘기가 있는데, 그런 마인드면 문 닫아야 해. 피자를 국산 치즈로 만들어라 그러면 안 팔린다니까. 우리가 삼성 휴대폰을 왜 써요? 품질 보고 사는거잖아.
-얼마전 안양 KGC 이정현의 트래블링(12월 7일 오리온전 99-99 동점에서 이정현의 버저비터가 들어가 KGC가 101대99로 승리)이 문제가 됐습니다. 다음날 KBL이 오심을 인정했지요.
트래블링 규정이 느슨한 NBA식으로 하다보니, 우리 선수들이 FIBA(국제농구연맹)가 주최하는 국제대회에서 고생을 했어요. 그래서 FIBA룰을 적용하고 있는데, 심판이 손과 발을 다 보기 어려워요. 육안으로는 어려워 리플레이 화면으로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많고. 지난번 그 상황은 육안으로 봐도 오심이었지. 쿼터당 NBA는 오심이 4개, 우리는 3~4개 수준입니다. 비슷해요. KBL이 심판 능력을 높여 오심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오심을 줄이고 심판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전에는 징계를 아무리 줘도 소용없었지. 심판이 월급제다보니 몇게임 못나가면 휴가나 마찬가지였어. 지금은 수당제로 바꿔, 주심이 경기당 70만원, 부심이 60만원, 3심이 50만원을 받고 있어요. 오심이 나오면 경기 배정을 안해. 심판도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닙니다. 오심이 적은 심판은 월 1000만원 이상 받아요. 잘 못하는 심판은 몇십만원밖에 못 받고. 매주 경기별 심판 평가 분석이 나와요. 에러가 몇개고 어느 쪽에 유리하게 나왔나, 이런 게 다 나와. 비디오 화면을 보고 뭐를 잘못했는지, 계속해서 재교육하고 있어요. 이제 심판을 매년 모집해 뽑아. 올해 심판이 14명인데 내년에도 이 사람들이 똑같이 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심판들이 죽을 지경일 거야. 사실 이전보다 오심은 줄었어요. 그래도 엉뚱한 것은 계속 나와요. 어쩔 수가 없어. 그건 NBA도 마찬가지고.
-올스타전 부산 개최에 대한 우려가 크더군요. 지방 개최의 취지는 좋지만 현재 꼴찌인 kt의 홈구장인 부산이다보니 관중 동원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부산이 제2도시이고, 부산시가 적극 협조하겠다고 해 결정을 했어요. 지금 성적이 안 좋지만, 3,4라운드 되면 회복이 되지 않겠어요. 걱정이 들긴 하지만 잘 될 것으로 봐요. 그래도 부산에 잠재적인 농구팬, 열성팬이 많아. 3대3 농구가 도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될 가능성이 큰데, 이번 올스타전 때 대학선발, 주니어, 시니어 선수를 4명씩 뽑아 반코트 게임을 해. 어렵더라도 지방에서도 올스타전을 해야지. 앞으로 서울과 지방에서 번갈아가며 개최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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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라이벌 의식이 없으면 안 되는데…. 아쉽지. 예전에는 달랐어. 삼성, 현대가 대단했지. 서울 SK와 부산 kt 통신 라이벌, 삼성하고 LG도 라이벌 의식이 있었고. 정책적으로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야지. 현대와 삼성, 두 팀의 OB전을 해보려고 했는데, 다른 팀이 반대해 안 됐어. 왜 삼성, 현대만 하냐고. 그거 하면 구단주에게 안 좋은 얘기 듣는다며 꺼려하더라고. 농구인들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걸 생각해야하는데, 팀 이해득실부터 따져. 감독 출신 단장, 구단주가 나왔으면 좋겠어.
-지난 시즌보다 관중수가 줄었지요.
관중이 줄었다고 나오는데, 실제 관중은 늘었어요. 예전에는 100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4000명이라고 발표하더라고. 그래서 직접 세본 적도 있어요. 모기업을 의식해 그런거지. 관중수입을 홈, 원정팀이 7대3으로 나눠가졌을 때는 거짓말을 못했어. 다시 와보니 계산이 복잡하다며 홈팀이 다 가져가는 걸로 바꿨더라고. 문체부(프로스포츠협의회)가 객단가를 구단 평가 기준으로 하면서 이런 게 사라졌어. 지난해보다 객단가가 50%나 늘었어요. 공짜가 없어지거나 줄어들었다는 얘기지. 실제 관중은 늘고.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팀이 있나요.
재미있게 경기를 하는 팀. 득점이 많은 팀 경기가 재미있어요. 안양 KGC나 서울 삼성은 100점 넘는 경기가 많잖아요. 팬들이 그걸 좋아한다고. 거기에 답이 있어요. 한국 선수들 활약이 좋아야 하고요.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