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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이상론과 현실론 사이의 딜레마.
그런데 작전타임 종료 후 DB 이상범 감독은 잘 뛰던 팀의 간판 센터 김종규를 쉬게 해줬다. DB의 골밑을 책임지는 핵심 자원. 승부처, 그리고 승기를 잡았을 때 김종규가 쐐기를 박아줄 필요가 있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녹스의 수비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걸 감안할 때 수비에서 그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컸다.
김종규는 다음 작전타임이 있기까지 약 1분20초를 쉬었다. 그 사이 DB는 아이제아 힉스에 연속 득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는 다시 접전이 된 상황이었고, 김종규가 다시 코트를 밟았지만 이미 삼성의 기가 살아난 후였다.
이 감독은 베테랑 지도자다. 승부처임을 몰랐던 게 아니다. 그렇다면 왜 중요한 순간 김종규를 뺐을까. 이 감독은 "이번 시즌 김종규, 두경민 등을 빼주는 타이밍을 갖고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빼고 싶어 빼겠나. 선수들이 사인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김종규는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시즌 초반 제대로 뛰지 못했다. 삼성전이 복귀 후 처음으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나름의 활약을 한 날이었다. 점차 몸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 두경민도 손목 부상으로 이탈했었다.
이 감독은 "김종규가 힘들다고 사인을 줬다. 공-수 한 타임만 쉬겠다고 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 경기 잡겠다고, 힘든데 계속 뛰게 하다 다치면 장기 레이스를 망친다. 선수들에게 쉬는 것도 힘이 있을 때 쉬라고 늘 강조한다. 산에 오를 때 정상을 앞두고 힘을 다 써버린 다음 쉬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이는 내가 안양 KGC 감독을 할 때부터 해온 선수들과의 약속이다. 아무리 승부처라고 해도, 내 철학은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해 잘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감독이 책임지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선수는 편하게 관리를 받으며 뛰는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하다 경기를 망치면 그 후유증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 한 경기 패배로 연패가 길어질 수 있고, 시즌 전체를 망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어떨 때는 선수가 아프고 힘들어해도 조금은 잔인하게 느껴지게 출전을 밀어부치는 감독들이 있는데, 이것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7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 김종규라면 누구보다 승부처에서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는 사치다. 시즌 전부터 관리를 잘하라고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이다. 선수에게 쉬는 타이밍에 대한 전권을 줘버리면, 선수가 이를 냉정히 판단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감독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냉정하게 경기, 선수를 봐야 한다.
이 감독은 삼성전 후 "장기 레이스다. 최하위지만, 언제든 상위팀들을 쫓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이상론이 과연 DB를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끌 수 있을까. DB 농구의 체크 포인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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