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현대모비스전에서 종료 직전 위닝샷으로 승리를 이끈 뒤 환호를 받고 있는 삼성 이정현. 사진제공=KBL
[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버저비터(Buzzer Beater)'. 농구 팬들에겐 상상만 해도 심장 쫄깃한 용어다. 버저로 경기 종료를 알리는 핸드볼, 아이스하키 등 다른 종목에서도 사용되지만 농구 고유의 용어처럼 통용되는 게 사실이다. 농구 특성상 슈팅한 공이 날아가는 중에 버저가 울리고 림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극적 효과는 다른 종목에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극한의 짜릿감과 허탈감을 주는 버저비터가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막판의 특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버저비터 주의보'가 발령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시즌에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희귀하다는 버저비터가 3월 들어 속출한 것도 특이하거니와 대부분 사례를 보면 '버저비터=승리'라는 공식도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버저비터 주의보의 시작은 지난 7일 창원 LG-대구 한국가스공사전이었다. LG 정희재는 19-10으로 앞서던 1쿼터 종료 7초전 아셈 마레이의 수비 리바운드에 이은 역습에서 3점슛 라인 안쪽에서 터프샷을 성공시켰다. 초반부터 크게 열광한 홈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LG는 82대59 대승을 하며 3연승을 달렸다.
17일 KT전에서 외곽슛을 시도하고 있는 KCC 허웅. 사진제공=KBL
같은 날 수원에서 열린 부산 KCC-수원 KT전에서 더 극적인 '찐 버저비터'가 화제에 올랐다. 경기 종료 4초 전, 패리스 배스(KT)에게 3점슛을 맞아 재역전(93-94)을 당한 KCC, 흥분한 상대 선수들이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틈을 타 허웅(KCC)이 빠르게 드리블 한 뒤 위닝 3점포를 성공시켰다. 오랜 기간 회자될 만한 명장면이었다.
이어 11일 LG-수원 KT전에서는 4쿼터 승부처에서 이재도(LG)가 '샷클락 버저비터'로 찬물을 끼얹었다. 18점차로 앞서다가 12점차(70-58)로 쫓긴 4쿼터 종료 7분11초 전, KT의 악착 수비에 막혀 공격제한시간(24초)만 소모하던 중 이재도가 불안정한 자세에선 던진 3점슛이 림을 통과했다. 이 덕에 LG는 87대76으로 승리, 창단 27주년 생일 축포와 함께 KT와 공동 2위로 상승했고 지금까지 2위를 지키고 있다.
LG 정희재가 7일 한국가스공사와의 경기에서 슈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KBL
LG의 연이은 버저비터에 질세라, KCC는 17일 KT를 상대로 또 버저비터 치명타를 날렸다. 주인공은 또 허웅이다. 1쿼터 종료 4초 전, 배스가 덩크슛으로 25-32로 압박하자 허웅이 7일 경기 때와 마찬가지로 단독 돌파에 이은 3점 버저비터로 응수했다. 결과는 역시 KCC의 119대101 승리. 허웅이 KT를 상대로 '배스 득점' 이후 '종료 4초 전 마지막 공격'에서 나온 연속 버저비터라는 점도 특이한 화제거리였다.
버저비터로 재미를 본 KCC는 버저비터에 당하기도 했다. 15일 한국가스공사전에서 3쿼터 종료 때 샘조세프 벨란겔에게 버저비터를 얻어맞는 등 이날 유독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였다가 85대99로 '고춧가루 부대'에 당했다. 결국 한국가스공사에 뺨 맞고, KT에 분풀이 한 셈이 됐다.
18일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는 삼성 이정현. 사진제공=KBL
이렇게 이어지던 버저비터 행진은 18일 서울 삼성-울산 현대모비스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최하위 삼성이 눈부신 투혼으로 연장 승부 끝에 94대91로 승리한 원동력은 사실상 3개의 버저비터였다. 3쿼터 홍경기의 버저비터로 승리를 예감한 삼성은 4쿼터 역전패 직전 이정현의 버저비터로 82-82, 연장 승부로 몰고 갔다. 이어 연장전에서 이정현이 또 날아올랐다. 종료 직전 시간에 쫓겨 던진 3점포가 골그물을 뚫자 남은 시간은 0.9초, 사실상 버저비터 극장골이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버저비터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 시즌 막판에 '1승'의 소중함이 더 커지다 보니 선수들의 순간 집중력이 괴력처럼 나타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