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베테랑 김정은의 '라스트 댄스'가 지난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하나은행은 이날 삼성생명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경기 종료 1분전까지 승부를 알 수 없을 정도의 혈전을 펼쳤지만 끝내 마지막 승부처를 넘지 못하고 패배, 아쉽게 챔프전에 오르지 못하며 시즌을 마쳤다. 이로써 20년간 코트에서 땀과 눈물을 흘렸던 레전드 김정은의 여정도 피날레를 고했다.
사실 하나은행은 만년 하위팀이었다. 오프시즌에 치른 다른 5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였지만,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도 늘 그랬듯 '당연히' 최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아시아쿼터 선수 1순위로 이이지마 사키를 뽑았고, 남자농구에서 잔뼈가 굵은 이상범 감독을 영입했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시즌 개막전에서 지난해 정규리그 1위팀인 우리은행을 66대45로 크게 이겼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약체로 분류된 신한은행에 62대76으로 패하면서, 초반 미풍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후 팀 창단 최다인 6연승을 거두며 평가는 돌변했다. 이후 2연패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5연승을 달리면서 하나은행의 무서운 기세는 이제 '이변'이 아닌 '흐름'이 됐다. 시즌 후반까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KB스타즈를 제치고 1위를 질주하면서 리그의 판도 자체를 뒤흔들었다. 플레이오프와 마찬가지로 정규시즌 경쟁에서도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하며 2위에 머물렀지만, 그 누구도 올 시즌 하나은행을 '패자'로 기억할 이는 많지 않은 이유다.
하나은행의 돌풍을 이끈 핵심 인물은 단연 이상범 감독이다. 오프시즌 때 예년보다 2~3배 강도 높은 훈련을 바탕으로 형성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 초반부터 강한 압박 수비로 상대를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승부를 뒤집는 '승리 방정식'은 제대로 통했다. 여기에 오랜 기간 하위권에 머물다보니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의 정예림, 박소희, 정현 등을 뽑았고, 이들의 능력이 이 감독의 지도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잠재력을 폭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은행뿐 아니라 한국 여자농구에서도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단연 김정은이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려했지만 후배들의 강한 요청으로 마지막 1년을 더 봉사한 김정은은 젊은 선수들의 구심점이자 멘토로서, 그리고 특히 수비에선 여전히 식지 않는 실력과 열정으로 친정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마음 편하게 유니폼을 벗을 수 있게 됐다. 냉정한 승부사인 이 감독이지만 15일 경기에서 김정은을 30분 가까이 뛰게 하는 배려로 그의 마지막을 축하하며 의미를 더했다.
이 감독은 "내 스스로에겐 30점밖에 되지 않는 시즌이었다. 다음 시즌 더 단단한 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하겠다. 선수들도 오늘의 눈물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김정은에 대해선 "그동안 너무 수고가 많았다. 이제 한국 여자농구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린 김정은은 "마지막까지 후회없이 뛰어서 미련은 없지만, 후배들을 챔프전에 못 올려준 것은 미안할 뿐이다. 이날 패배가 하나은행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늘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여자농구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쓴 하나은행과 김정은의 멋진 동행에 박수를 보낸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