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현 감독은 영화 '가비'를 만들며 꽤나 우여곡절을 겪었다. 투자사가 갑자기 손을 떼면서 100억 제작비가 52억원으로 줄었고, 촬영 지연으로 여배우가 중도에 하차했다. 시나리오 수정에 걸린 시간만 3년. 장 감독 스스로도 "영화가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한다. 쓴 맛을 즐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삶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다는 말은 그런 의미일 게다.
장 감독은 900일 동안 '가비'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커피를 공부했다. 그리고 커피가루 위에 가느다란 물길을 내고 방울방울 커피를 추출하듯, 커피에서 사람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헤아렸다. 산문집 '외로워서 완벽한'은 그 방울방울이 모인 이룬, 커피를 닮은 34가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장 감독은 책의 프롤로그에서 "영화를 찍을 수 없어 괴로운 순간에, 속 털어놓을 이 없어 외로운 순간에 커피를 내렸다. 한적한 외로움 속에서 나는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커피에 대한 사랑도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었다. 홀로 남아서, 외로워서 완벽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인생의 중요한 장면마다, 장 감독 앞에는 늘 커피가 놓여 있었다. 1990년 도피하듯 떠나온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학 시절에도 낯선 세계의 빗장을 열어준 건 처음 맛본 에스프레소였고, 배우 유지태와 영화 '황진이' 캐스팅 미팅을 할 때도 에스프레소 세 잔이 함께했다. '가비'를 만들기까지 지리하고 험난한 과정을 견디게 해준 것 또한 커피였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장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섬세하다.
'외롭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과 '인생은 그렇게 겹겹이 더해지는 맛이 있다는 것'. 장 감독이 내린 커피향은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장윤현 지음 / 샘앤파커스 / 1만4000원)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