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동갑내기 친구들한테 면박을 당하고, 연상의 아내 앞에서 눈치만 보고 살아가는 마흔 한 살의 귀엽고 철없는 중년 남성이다.
친구들은 사랑 놀음 중인데 혼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때론 상처도 받지만 그 모습이 왠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SBS 주말특별기획 '신사의 품격'의 이정록이 그렇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인물 히스토리는 '한 때 스포츠카를 끌고 압구정을 누비던 좀 놀아본 오빠' '돈 많은 누나와 결혼하고도 바람기를 버리지 못해 피곤하게 살아가는 철없는 남편' '무리지어 다니는 친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은 한량' 등으로 요약된다.
이정록을 연기하는 이종혁(38)는 "이번 캐릭터는 가볍고 자연스러운 맛을 살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벼운 연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정록도 우울할 때가 있지만 재밌는 우울함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항상 기분이 '업(up)'돼 있구요. 그 때문에 늘 배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해요. 오버하지 않는 코미디를 하려다가 재미없게 느껴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되고요.(웃음)"
사진제공=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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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귀여운 바람둥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시청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장동건 부럽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제기되는데도 정작 본인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가 잘 되니까 좋게 봐주시는 거겠죠. 어찌보면 정록이 맛깔스러운 조연 같은 느낌을 주잖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을 보여드린 게 좋은 평가를 낳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변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는데 특별히 이번에 크게 이슈가 된 듯해요."
'신사의 품격'을 만난 것도 그에겐 특별한 행운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두 편을 놓쳤다. 만약 뮤지컬 대신 드라마에 출연했더라면 '신사의 품격'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처음엔 대본도 없이 시놉만 받았어요. 정록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그려질 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출연을 결정하기 아무래도 어려울 수 있는데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를 믿고 하기로 했죠. 마침 (장)동건이 형도 출연한다고 하니까 선뜻 하게 됐죠." 이종혁과 장동건은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 보이즈 소속으로 서로 친분이 있지만 작품에서 만나긴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도부장 차종훈 역으로 대중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이후 이종혁은 매 작품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여왔다.
드라마 '추노'에서 암살자 황철웅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로 탈바꿈시킨 것도 그의 연기 덕분이었다. 가난한 무관 출신으로 야망 때문에 좌의정의 뇌성마비 딸과 혼인한 황철웅은 당초 단순한 악역에 가까웠다. "첫신이 철웅이 아내의 말귀를 못 알아듣겠다며 짜증을 내는 내용이었는데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눈빛에 변화를 줬죠. 그랬더니 제작진이 그 느낌을 계속 살려주셨어요. 그래서 원래 없던 노모까지 등장한 거에요."
인터뷰 내내 단답형 대답이 이어지자 "제가 언변이 화려하지 못해요"라며 이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조금만 자기 홍보를 잘하는 연예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랬다면 좀 더 빨리 대중의 인기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연기파 혹은 개성파 배우라는 수식어는 욕심이 나지만 스타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낯선 개념이다. 물론 물질에 대한 욕심은 크다. 이번 작품이 잘 돼 CF도 찍었으면 좋겠다"라며 웃었다. 김명은 기자 dram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