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입력 2012-07-23 17:35



30대 여자 서이수(김하늘)와 40대 남자 김도진(장동건)은 이제 막 콩닥콩닥 오글오글한 연애를 시작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건지. 행복한 시간도 잠시,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서 날아 온 훈훈한 소년 콜린(이종현)이 알고 보니 도진과 네 남자의 첫사랑 김은희(박주미)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이수와 도진의 연애는 산산조각이 났다. 안 그래도 (사랑/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이수는 이수대로, 평생을 같이 살고 싶었던 여자를 붙잡을 수 없는 도진은 도진대로, 어느 누구도 잘못도 아닌 채로 강제 종료된 연애 때문에 괴롭고 쓰라린 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자 나이 마흔이면 그 동안 존재도 모르고 지냈던 자신의 아이가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해도 그게 썩 놀랍지 않은 일이 되는 걸까. 지난 14회의 멘붕이 워낙 강력했던지라 오히려 15회는 그럭저럭 덤덤한 수준이었다. 처음 맞은 매가 너무 얼얼하게 아파서 그 다음에 맞은 매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 뭐 그런 거 말이다. 뭐 어떻게든 흘러 가고는 있고, 마무리 되어 가고 있구나 싶었다. 다만 이수가 말했던 것처럼, 하루는 괜찮았다가도 또 하루는 전혀 괜찮지 않은 그런 기분들이 본방 와중에도 계속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 갔다했더랬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목조목 잘 풀어내야 할지, 얼마나 이야기가 길어질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보자면 이렇다.

도진과 이수, 콜린과 은희를 포함한, <신사의 품격> 속 모든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 보기 힘들어진 이유는, 설마 했는데 작가님이 콜린으로 도진-이수 커플(a.k.a 진리커플)을 보며 느끼던 대리만족의 판타지를 와장창 깨주신 덕분이요, 하필이면 그 타이밍이 초반에 생각보다 기를 못 펴던 도진 캐릭터가 본격 매력을 발산하며 승승장구하던 때여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만석인 돼지코에 프린터기 플러그 꼽겠다고 본체 전원 플러그를 뽑아서 내 혼을 다한 레포트가 증발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캐릭터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아니다.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고 생각하는 은희부터 시작해볼까. 애 아빠인 도진 모르게 콜린을 낳아 기른 게 잘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최선의 초이스는 아니었다고는 못하겠다. 이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걸까, 도진과 이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 이 사실을 받아 들일 수는 있으려나, 날 정말 사랑하기는 할까, 난 이렇게 미혼모가 되는 걸까, 및 기타 등등. 은희는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엄청 고민했었을 것 같아서다.

은희가 이수에게 '콜린 때문에 고민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난 도진에게 마음이 없으니 나 때문에 도진과 헤어질 필요는 없다.'고 알려주던 모습도 마찬가지. 어차피 도진이 구구절절 변명 안 할 텐데, 이렇게 오지랖 돋게 은희가 알아서 이실직고하는 게 이수 입장에서 그렇게 나쁘기만 한 일도 아닌 듯싶었다. 하지만 남의 인생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초토화시켜 놓고, 은희는 마냥 고고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내 너무 소쿨 모드였던지라 그게 좀 불편했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역시 마음은 그만큼 관대해지지 못해서 말이다. 더불어, 콜린은 그저 아빠가 보고 싶은 철부지 10대 사춘기 소년에 불과하니 디테일은 이하 생략하는 걸로. -그렇지만 연기는 역시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그리고 넘어가서 이젠 삼촌의 포지션에서도 맹활약 중인 세 절친 임태산(김수로), 최윤(김민종), 이정록(이종혁)의 이야기. 처음에는 '아니 이 아저씨들은 갑툭튀한 조카 앞에서 일말의 어색함도 없이 뭐가 이렇게 쉽고 쿨하냐?!'는 소리가 육성으로 튀어나왔는데 16회 프롤로그 포함 지난 몇몇 장면을 되새김질해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친 도진이의 아들이라는 것, 그러니 당연히 본인들이 삼촌이 되는 거라는 것. 이 아저씨들에게 이 팩트는 절대적이고 강력하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거나 방해받지 않을 만큼. 개개인을 따져 보면 이건 아니라고 콕 집어서 말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서도 -특히 도진과 정록-, 이렇게 서로에게 우주 최고인 모습들을 지켜 보면 네 남자 모두 신사가 되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마흔 될 때까지 인생 헛 살지는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리커플로 넘어갈 차례. 이수가 갈팡질팡하며 다크이수가 되는 건 당연하니 패스하고, 도진은 이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니 잡을 수가 없는 거였다. 막말로 자신은 이제 X차나 다름 없으니까. 서이수는 너무 좋은 사람이고,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인데 자신 곁에 있으면 얄밉게 말하기 류 甲인 그 동료 교사의 뒷담화 소재나 되어버리니 붙잡을 용기, 아니 염치가 없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사랑하는 사람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도진의 마음 역시 지옥 같기는 매한가지 아니었을까.

사랑하니까 보낸다는 말, 정말 비겁한 변명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라 쓰고 개드립이라 읽음- 라 생각했는데 한 달도 안 되어서 결국 먼저 헤어지자고 말할 수 밖에 없던 도진의 선택 역시 최선이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이 아저씨는 지금 무슨 선택을 해도 욕을 먹을 상황이다. 자신에게 생긴 일 때문에 이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도 얼척 없고, 콜린을 냅두고 사랑 밖에 난 몰라를 외치며 이수에게 가는 건 더 얼척 없다. 그러니 주어진 옵션 중에서 그나마 가장 모양이 덜 빠지는 진 건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이수를 밀어내는 거다.


그래서 이 커플의 멜로는 보는 사람을 같이 멘붕시키는 와중에도 절절했다. 사랑은 식지 않았는데 헤어져버렸다. 이게 딱히 두 사람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왜 등장했을까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콜린의 탓도 아니니까.

이수는 예전의 은희처럼 '상상도 못 했던 세계로 통하는 문' 앞에 서 있다. 내 남자의 다 큰 아들이라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이수 앞에 놓인 현실이다. 이수 앞에 놓인 옵션은 도진과 헤어지는 것, 혹은 도진을 선택하고 그의 아들 콜린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세간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그토록 미워하는 자신의 엄마처럼 자신이 낳지 않은 남의 아이를 키우게 되는 일이라는 1+2 급의 덤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랑스럽고 용기까지 있는 대단한 여자 서이수는 다시 한번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들여다 보더니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 도진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지난 날 도진이 일러주던 짝사랑 매뉴얼을 이렇게 애틋하게 응용하다니! 이 언니는 여신 비주얼로 예쁘다 못해 마음까지 건강미가 넘친다. 정말 도진은 이수에게 절이라도 해야 될 듯. 그것도 한번 해서 될 게 아니라 앞으로 이수 만나러 갈 때마다 베티 타지 말고 삼보일배 하면서 가는 걸로.

어쩌면 <신사의 품격>이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그러지 않는 편이 훨씬 좋은데도, 그러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렇게 행하고 마는 것. 캐릭터들의 모든 감정선과 행동 패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한 관용구로 정리가 되어 간다.

상상도 못할 가시밭길을 걷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수는 도진을 사랑하고, 결혼관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라와 태산도 서로를 사랑해서 놓지 못하고, 골백번도 이혼 서류에 싸인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숙은 정록을 받아주고 같이 살고 있고, 오빠인 태산의 마음도 잘 알고 죽은 언니에게도 너무 죄송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아리는 17살 연상 윤을 사랑하고, 자칫하면 소중한 친구 태산을 잃을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은 메아리를 마음에 두고 있다.

물론 머리의 이해 정도와 마음의 포용 정도가 달라서 생기는 미묘한 균열들이 군데군데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떻게든 끝까지 이들의 닥본사하며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좋으니까. 그러니 부디 드라마가 끝나는 그 시점에 이수는 물론 다른 세 언니들과 네 오빠들 모두 행복하고 안녕하기를.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대고, 간절한 바람이자, 또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욕심이다. <토오루 객원기자, 토오루(http://jolacand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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