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검사외전' 악역 장사장,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

기사입력 2016-02-16 08:38


사진제공=샘컴퍼니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초승달 모양 눈웃음이 인간미를 폴폴 풍긴다. 말투도 다정다감. 인상이 무척 선하다. 영화 '검사외전'의 악역 장사장처럼 묵직한 카리스마를 예상했다가 기분 좋게 배반 당했다.

'검사외전'을 본 관객이라면 장사장 캐릭터를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테다. 부장검사 출신 정치인 우종길(이성민)의 뒷배를 봐주는 건달 출신 건설사 대표. 우종길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커피포트의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위협하자 이를 슥 피하는 장면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왠지 앞으로 스크린에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 그러니 이 배우의 이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한재영'(38)이다.

그런데 정작 한재영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부족함이 많다"며 무척 겸손해했다. "어찌나 쑥스러운지. 영화에 제가 등장하면 고개를 푹 숙였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닭살이 돋더군요."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는 그를 대신해 존재감이 돋보였다고 전하니 "잊혀질 만하면 다른 인물들이 '장사장'을 언급해준 덕분"이라며 사람 좋게 웃는다.

'검사외전' 오디션에서 캐릭터 3개의 대본을 읽었는데, 그중 장사장 역이 그에게 주어졌다. "어떤 역할이든 좋다"는 마음이었는데 "조연 중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역할을 맡게 돼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한다.

'검사외전' 이전에도 영화 '강남 1970' 이민호의 오른팔, '친구2' 김우빈의 계부, '황제를 위하여' 박성웅의 수하 등 건달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했다. 하지만 한 번도 같은 연기를 한 적은 없다. '검사외전'의 경우 오락성이 강한 영화라, 도리어 장사장 캐릭터는 톤을 무겁게 잡아 밸런스를 맞췄다는 설명이다. 건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그의 연기는 이렇게 나왔다. "내적 변신이 준비돼야 외적인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그러기 위해 최대한 캐릭터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거죠. 인물의 라이프 스토리도 구상해보고, 직간접적인 경험들도 동원하고요. 영화나 책을 통해 얻은 정서를 저에게 맞게 변형하기도 하죠."

사실 조연 연기는 상당히 어렵다. 캐릭터의 서사를 쌓아가며 변화 발전할 수 있는 주연과는 달리, 조연은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투입돼야 한다. 등장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흐름이 끊겨 캐릭터가 불균질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배우의 연기 내공이 중요하다. 어느 영화든 조연 캐릭터에 연기파 배우들이 몰려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장르물일수록 작품 분위기나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니 한번 흐름을 놓치면 연기톤을 맞추기 힘들어져요. 감정이 끊어지지 않도록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연기에 대해 말하는 한재영의 목소리가 뜨거워진다. 고수의 무공이 그 열기를 통해 전달된다. 10년 넘게 연극 무대를 지킨 연기의 고수. 다른 연극 출신 배우들에 비해 그의 스크린 진출이 뒤늦다는 생각도 든다.

한재영은 지방의 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후 스물다섯에 서울 대학로로 올라왔다. 김상중 등 동국대 출신들이 1990년에 창단한 극단 신화에서 1년에 5~6편씩 작품을 올렸다. '삼류배우',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라이어', '불 좀 꺼주세요' 등 대학로 명작들을 두루 거쳤다. 20대 후반 즈음 몇몇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수양하는 심정으로 연극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지인의 제안으로 영화 '친구2' 오디션을 보면서 다시 영화계와 인연이 닿았다. '강남 1970' 이후엔 이 영화를 본 황정민의 제안으로 그의 회사에 몸담게 됐다. "당시 여러 회사에서 접촉을 해왔는데, 황정민 선배 때문인지 이 회사가 자꾸 끌리더라고요." 소속사가 대화 주제로 나오자 한재영은 강하늘, 박정민, 정상훈 등 동료 후배들을 애정 가득 담아 칭찬하며 흐뭇해했다. "아직 인터뷰 안 해본 배우가 있으면 꼭 만나보라"며 권유까지 했다.

한재영은 앞으로 영화든 연극이든 드라마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할 계획이다. 차기작도 열심히 고르고 있다. "향기를 남기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향기를 구체적으로 물으니 "꼬랑내"라고 했다. '사람 냄새'의 다른 표현이다. 한재영은 "다음에 볼 땐 소주 한잔 하자"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 테이블에 '꼬랑내'가 구수하게 풍겼다.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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