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신세경, 내겐 너무 낭만적인 그녀

기사입력 2016-04-01 16:25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분이에게 꿈은 부자가 돼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호화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다. 딱 굶지 않을 만큼의 음식이 있었으면 좋겠고 내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작은 울타리 정도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이게 바로 분이의 꿈이었다. 사실 가장 실현하기 어렵고 힘든 꿈이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분이의 꿈은 곧 배우 신세경(26)의 꿈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시청자의 월, 화요일 밤을 책임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김영현·박상연 극본, 신경수 연출). 극 중 간난(전미선)의 딸이자 이방지(변요한)의 동생, 그리고 이방원(유아인)의 유일한 정인 분이로 울고 웃었던 신세경은 이런 분이의 꿈을 동경하고 연모했다.

귀족의 곳간에 불을 질러 억울함을 표출할 수도, 귀족인 이방원의 뺨을 당차게 때릴 수도, 대의를 위해 사랑을 포기할 수 있었던 분이. 모험보다 안전을 택하고 새로운 일에 겁부터 내는 신세경에겐 멋진 '뮤즈'이자 낭만 그 자체였다.

"평소 히어로적인, 여장부 같은 여자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 했죠. 아무래도 제가 가지지 못한 부분이 있는, 반대의 캐릭터에 끌리잖아요. 전 평소에 모험을 좋아하기보다는 안전을 택하거든요(웃음). 겁도 정말 많고 제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있어 늘 어려움을 느껴요. 그런데 분이는 이런 저와 너무 다르잖아요.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분이에 대해 설명하는 그 순간부터 홀딱 반했어요. 하하." (이하 일문일답)


- 50부작이었던 '육룡이 나르샤', 호흡이 긴 작품이라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겠다.

확실히 호흡이 길어 지치긴 했어요. 빠듯하게 촬영이 진행되는 다른 미니시리즈보다 '육룡이 나르샤'는 비교적 체력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지만 대신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워낙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이어서 체력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죠. 대신 다른 선후배들에게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적인 긴장이 계속돼 스트레스가 컸어요. 50회 내내 흐트러지면 안되니까요. 사실 제가 50회를 모두 이끌었다고 하기엔 다른 분들의 공이 너무 커요. 전 너무 미미해서 부끄럽네요. 하하.

- '육룡이 나르샤'를 끝낸 소감은?

전작 끝낸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육룡이 나르샤'를 하게 돼 혹시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했어요. 전작의 여운이 빠지기도 전에 '육룡이 나르샤'를 참여하게 돼서 '시청자가 불편해하면 어쩌지?' 고민했고요. 그런데 캐릭터에 대한 욕심을 안 할 수도 없었어요. 목적과 의도가 명확한 캐릭터여서 재미있게 준비했고요. '육룡이 나르샤'를 마치고 난 뒤 소감은 '분이가 난세를 통과하면서 죽음에 이르지 않고 살아남아 다행이다'죠. 세상이 너무 힘드니까 분이는 당연히 죽을 줄 알았거든요. 살아서 너무 다행이었고 촬영하면서도 이런 분이가 뭉클했어요. 마지막을 떠올려보니 분이는 희망을 마주하고 끝났더라고요.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최근에는 후속인 '대박'을 보면서 실감을 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몸을 담고 있던 작품이라 끝나고 나서도 끝난 것 같지 않았거든요. 집에서 쉬다가도 '콜 타임 나올 때가 됐는데 왜 안 불러주지?'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웃음). 그래도 시원해요. 전 아인 오빠와 다르게 시원함이 98%로 섭섭함이 2%로랍니다.


- 웰메이드 '육룡이 나르샤'에 열광했던 시청자도 상당했는데?

어떤 작품을 하건 언제나 시청자, 팬들의 응원이 힘이 돼요. 작품을 하면서 보람 느끼는 순간이 여러 가지 있지만 특히 시청자, 팬이 호평해줄 때 기분 좋아요.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이 연기하는 배우에겐 최고의 보람이죠.

- '육룡이 나르샤'는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이기도 하다.

그래서 굉장히 기대했어요. 두 작품 모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었죠. 진짜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어요. 게다가 분이는 제가 원하던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모두 갖췄거든요. 분이가 담고 있는 의미가 컸으니까 '성실하게 해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졌죠. 연기할 때 소이와 분이는 완전히 달라요. 두 캐릭터가 놓여있는 시대적 상황도 다르고 느낌도 달라 특별히 연결고리를 생각하며 연기하지 않았어요.

-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육룡이 나르샤'까지 김영현·박상연 작가에게 연달아 선택당한 이유는?

진짜 모르겠어요. 하하. 저 대신 한번 여쭤봐 주시면 안 되나요? 사실 저도 정말 궁금하거든요(웃음). 물어볼 용기가 없었어요. 부끄럽잖아요. 매번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육룡이 나르샤'를 처음 제안해 주셨을 때도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임했죠. 다른 마음을 품을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두 작가님은 초반 미팅했을 때부터 저를 뿅 가게 만들어 주시거든요(웃음). 또 불러준다면 뛰어가야죠. 저도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만드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지가 너무 기대되거든요.

- 20대 여배우 기근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신세경은 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 큰 영광이에요. 제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고 경험이었죠. 20대 여배우를 대표한다기보다는 좋은 작가와 좋은 제작진, 그리고 멋진 캐스트가 함께 했기 때문에 돋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육룡이 나르샤'를 함께 했다는 게 곧 제겐 기쁨이자 영광이죠.


- 역사를 바탕으로 한 '육룡이 나르샤'에서 다른 용과 달리 분이는 가상 인물이었다.

맞아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 인물이죠. 그런데 전 그 부분이 더 매력적이더라고요. 새로운 캐릭터였고 덕분에 어디에도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죠. 김영현·박상연 작가에게 '육룡이 나르샤'의 분이 캐릭터를 들었을 때도 가상 인물이었지만 확실한 주관이 있어 좋았어요. 가상 인물이라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죠.

- 분이 캐릭터는 기존 사극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자 히어로인데, 이런 분이를 연기한 자신의 연기 만족도는 어떤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객관적일 수 없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죠. 스스로 어떤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제가 들어왔던 단점이나 실수들, 부족한 점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기억해두고 다음 작품에는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번엔 조금 고쳐진 것 같아요. 반대로 이번 작품을 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이건 저만 알고 있으려고요(웃음). 잘했다며 자화자찬보다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발견한 단점을 밝히기 어렵다면, 반대로 '육룡이 나르샤'에서 고쳤던 단점은 무엇인가?

한동안 현대극을 계속해서 어투나 행동, 걸음걸이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완벽히 바꿔 보여줬다 할 수 없어요. 그냥 새로운 바탕에 다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 '육룡이 나르샤' 첫 등장 당시 얼굴에 검댕을 잔뜩 바르고 등장해 화제였다.

깜짝 놀라셨나요? 하하. 전 생각만큼 심한 것 같지 않았는데…(웃음). 검댕이 분장은 처음부터 마음먹어서 놀랍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더 심했거든요. 첫 촬영 때 분장을 열심히 하고 등장했는데 그곳에 있던 모든 스태프가 박장대소하더라고요. 신경수 PD가 '안 되겠다. 조금만 (분장을) 걷어내자'라고 하셔서 조금 수위를 줄였어요. '육룡이 나르샤' 초반에 분이는 분장의 힘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산발 머리에 얼굴에 핏자국도 묻혔지만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았잖아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과해서 우스꽝스럽지 않아 다행이죠.

- 분이를 사랑하는 팬들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약해진 캐릭터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저도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흐름상 가장 자연스러운 방향이었다고 생각해요. 초반 분이의 목적과 의도는 충분히 드러났다고 여겼죠. 분이는 '육룡이 나르샤'에 나오는 많은 인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약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록 중·후부반부터는 뺨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불 지르고 싶으면 지르는 초반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갈등을 시작하고 고민하는 모습 역시 '육룡이 나르샤'에서 상징적으로 비쳤다 생각해요. 후반부에 분이가 이방원에게 '어느 쪽을 택하던 결국 이렇게 됐네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굉장히 큰 울림을 준 것 같아요. 백성의 이야기를 한 거잖아요. 캐릭터로만 본다면 완만해졌지만 그것 또한 울림으로 의미가 있었다고 봐요.

- '육룡이 나르샤'를 돌이켜봤을 때 어떤가?

하길 너무 잘했죠(웃음). '분이 같은 캐릭터를 살면서 또 만날 수 있을까?'라며 생각할 정도예요. 다시 만나기 힘든 캐릭터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분이가 마지막까지 꿈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에요.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 '육룡이 나르샤'를 촬영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나?

벌써 가을부터 겨울, 봄까지 함께 보내다 보니 많은 일이 있었어요. 너무 많아서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유독 생각나는 게 폭설이에요.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갑자기 폭설이 내려 저녁 촬영이 취소된 적이 종종 있었거든요.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어려운 날은 문경에서 지내면서 온전히 스태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추억을 쌓았어요.

- 추위 때문에 고생도 많았겠다.

정말 추웠어요. 그런데 반전은 '뿌리깊은 나무' 할 때가 더 추웠어요. 하하. 추위의 가장 큰 문제는 입이 빨리 언다는 거죠. 사극은 대사 전달을 정확히 해야 하는데 추위 때문에 입이 굳으니까 난감하더라고요. 이건 자연 현상이라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 많이 힘들었어요. 난로를 가까이하고 담요를 써봐도 추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어요. 저를 비롯해 많은 배우가 답답했을 거에요. 그런 점이 아쉽기도 하고요.

- '육룡이 나르샤'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이에 비례한 시청률은 얻지 못했다. 아쉽지 않나?

저는 시청률이 아직 어려워요. 기대치를 점쳐보는 거잖아요.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완벽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냈어도 열어보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드라마, 영화인 것 같아요. 시청률을 보면서 크게 낙담하지 않았어요. 다른 배우, 스태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시청률이 아쉽지 않았어요.

- 신세경에게 '육룡이 나르샤'는 어떤 의미인가?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잘 가르쳐준 작품이기도 하고 인내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작품이기도 해요. '육룡이 나르샤'는 제게 딱 그런 작품이었죠.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SBS '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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