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이 몰랐던 욕망의 권율

기사입력 2016-06-29 12:38


배우 권율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권율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위 사진으로 얼핏 배우 권율을 본다면 하얀 모찌같은 얼굴에서 부드럽다 혹은 선하다는 인상을 대부분 받을 것이다. 그 덕에 따라다니는 수식어 또한 '밀크남' 혹은 '두부남'이 대다수다. 또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아들 이회의 정직하고 선한 모습이나, 그를 로코남의 계보에 올려놓은 tvN '식샤를 합시다2' 이상우 사무관의 자상하고 달달한 얼굴은 그런 권율의 모습을 완성하는 듯 했다.

영화 '사냥'은 또 다른 권율을 꺼내놓았다. '사냥'은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사냥꾼 기성의 목숨을 건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린 작품이다. 권율은 영화를 통해 전에 없이 비열하고 또 욕망에 가득찬 얼굴을 드러낸다. 실제 대중들이 '한번더 해피엔딩'이나 '식샤2'에서 그토록 설슌 그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날카롭고 또 번뜩였다. 어떤 게 실제 모습인지 궁금할 정도다.

"다 제 안에 있는 부분이에요. 연기함에 있어서 제가 그 사람이 된다는 것 보다도 그 사람으로 보이게끔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잘 표현해내는 게 급선무죠. 사무관도 제 안의 모습을 확장해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사냥' 맹실장도 누군가를 굉장히 미워했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던 기억들을 뽑아 극대화한 부분이죠. 사실 곱상한 외모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려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콤플렉스였던 적도 있어요. 그러나 배우가 연기하는 데 있어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공감가게 연기하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레 장면에 몰입하면 야비하고 이기적인 제 안의 모습과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고 거기에 가장 신경 썼어요."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사냥'에서 엽사들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전회장의 수하 맹실장역을 맡은 권율의 얼굴은 그 전과는 사뭇 달랐다. 손에 총을 들고 있는 강인하고 또 어딘지 우락부락한 느낌의 엽사 무리 사이에서 이마를 훤히 드러낸 머리에 흙길을 걸어도 여전히 광나는 구두, 양복 차림으로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탐욕적인 인물을 그렸다. 권율은 이를 위해 많은 디테일에 신경 썼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말끔했던 맹실장이 헤어가 구겨지고 행커치프도 떨어지는 등 산에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감정 또한 의기양양하고 건방지게 등장했던 친구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집단의 무서움을 보게 되고, 기에 눌려 그들의 롤에 따라가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무시를 당하고 무능함을 느끼고 또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그런 인간의 바닥과 감정 변화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잘 끌고 가려 했어요."

특히 맹실장 캐릭터의 변화가 단적으로 포착되는 지점은 죽은 엽사의 신발을 갈아신은 장면이다. 관객들의 환호가 터진 '사냥'의 주요 장면이기도 하다. 권율은 당시 맹실장이 어떤 의지를 표시한 것인지 찬찬히 설명했다. 그가 맹실장을 위해 고민했던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을 오르며 구두를 두세번 털고, 구두에 흙도 묻히기 싫었던 남자가 자신의 구두를 버리고 죽은 이의 장화를 신는 것, 이 남자의 변화를 가장 메타포적으로 잘 보여주는 지점이죠. 사실 시나리오상에는 없었고 초반 촬영할 때 수트에 구두를 신고 촬영하려니 다치고 많이 미끄러지기도 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우연히 진웅 형님과 술자리에서 '너 나중에 더 뛰어야 하고 더 험한 씬 많은데 너 어떡할래. 차라리 나중에 죽은 엽사의 신발을 신거나 옷을 입으면 어떠냐'고 제안해주셨고 감독님과 상의 끝에 탄생한 장면이에요."

이처럼 권율은 현장에서 디렉션을 잘 따르는 편이다. "디렉션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렉션만큼 저를 위한 작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테이크를 열번 스물 삼십번 가는게 무섭거나 굴욕적인게 아니라 너무 감사한 작업이에요. 이 많은 스탭들의 시간은 돈이고 에너지가 돈인데, 제 캐릭터를 위해 3, 40분을 가준다는건 엎드려 절 해야할 일이죠. 물론 모니터 앞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을 해야겠지만요."



믿음직한 김한민 감독은 물론, 실제 '사냥'에는 안성기, 조진웅, 손현주 등 연기파 선배들이 대거 포진했다. 권율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현장, 이 영화를 택하게 된 계기 또한 선배들과 안성기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안성기에 대해 "늘 솔선수범하는 배울점이 많은 분이다"며 예찬했다. 또 조진웅과도 "연기 얘기를 끊임없이 하는 과정 속에서 훌륭한 조언들이 나오게 된다. 저도 형에게 아이디어를 충분히 던질 수 있게끔 해준다"며 "다들 오픈된 마인드로 서로 믿고 응원했다. 유독 커뮤니케이션 굉장히 잘 되었던 현장이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조진웅에게 특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조)진웅 형은 소속사 큰 형님이고 워낙에 많은 후배들을 알뜰살뜰 챙기세요. 제가 현장에서 막내다보니 따로 놀고 그러니까 괜히 장난치고 툭툭 건드리고 그러시죠. 시사회에서는 졸지에 싸가지 없는 놈이 되기도 했어요. 그게 재밌으신지 자꾸 놀리네요(웃음)."


23일 진행된 영화 '사냥' 언론시사회에서 권율은 "내가 여태까지 했던 드라마 속 이미지보다는 날이 서있고, 어딘가 부족하면서 싸가지 없는 역할을 이번에 연기했다. 낯설면서도 재밌기도 하고 싸가지없어 보이기도 하고 나도 보면서 흠칫 놀랐다"고 말했다. 이에 조진웅은 "평소 모습이라고 단언컨대 말하고 싶다"고 말했고, 권율은 "아직 내가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말 하는데 끼어들지 말아 달라"고 맞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조진웅의 행동이 이해 갈 정도로 실제 만난 권율은 젠틀하면서도 유쾌했다. 또 인상과 달리 툭툭 내뱉는 말에선 남자다움과 힘이 느껴지기도 했다. 또 안성기가 "그렇게 웃긴 친구 처음 봤다"고 하거나 조진웅과 만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재밌는 남자다. 그러나 개그감을 극구 부정하며 "아니다. 그냥 제가 선배님들하고 막내다 보니 현장에서 애교도 많이 부리고 실없는 소리를 하면 귀엽게 봐주시고 다 받아주시는거다.사실 멍석 깔아주면 못하는 타입이다"고 스스로를 설명한다. 또 실제 모습에 대해 "저는 글쎄. 그냥 생각보다 정이 많고 털털하고 사람 좋아하고, 또 의외로 남자다운 성격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권율은 그간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왔다. 그를 대중적으로 알린 영화 '명량'의 이회, '피에타'의 어딘지 슬픈 기타남,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보여준 바른 사무관의 모습까지 그가 맡았던 역할은 어딘가 조금씩 다르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다 쌓여서 '사냥'의 제가 된거죠. '됐다'가 잘됐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권율이라는 배우가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게 한건 '피에타'의 한장면, '명량'의 한부분, 또 '잉투기'의 한 대목과 '식샤를 합시다2'의 대중적인 사랑 등이 쌓여서 된 게 아닐까요?"

켜켜히 쌓여 만들어진 권율, 이번 '사냥'의 맹실장 캐릭터와 본인의 교집합에 대해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데 있다"고 직접 밝혔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도 연기적인 변화를 계속 시도할 것임을 말하는 권율의 눈빛에는 맹실장보다 더한 욕망과 치열함이 느껴졌다.

"의도적으로 어떻게 변화를 해야겠다, 혹은 이 캐릭터로 변신해야겠다 이런건 없어요. 하지만 데뷔 후 열정이 가장 불탔던 시기에 많이 그만큼 스스로를 못 채웠던 아쉬움이 있어 캐릭터와 작업에 대한 욕심은 많죠. 두려움을 버리고 다 부딪혀보고 싶어요.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대한 도전할 생각입니다. 또 외모와 이미지가 국한되지 않게 끊임없이 계속 성장하고 또 공부하고 싶습니다."


gina1004@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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