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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이준익 감독, 설경구·변요한·이정은…이름값 아깝지 않은 '자산어보'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1-03-19 13:51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역시는 역시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가 이준익(62) 감독이 사람 냄새 꾹꾹 눌러 채운 아름다운 사극 영화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와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가 만나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사극 영화 '자산어보'(씨네월드 제작)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 그가 19일 오전 진행된 국내 매체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자산어보'에 대한 연출 의도와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했다.

'자산어보'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여유당전서' 등을 저술한 실학자 정약용의 형이자 멘토였던 정약전이 유배 생활 중이었던 1814년 흑산도 연해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해양 생물을 기록해 만든 어보(魚譜)의 서문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진정한 벗의 우정을 나눈 정약전과 창대의 교감을 비롯해 '자산어보'가 탄생한 아름다운 흑산도 바다의 풍경, 그리고 수묵화 같은 흑백의 묵직한 힘이 담긴 3월 마지막 신작으로 관객에게 특별한 울림을 선사할 예정.

특히 '자산어보'는 영화 '사도'(15) '동주'(16) '박열'(17) 등 '시대극의 대가' '사극 장인'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신작이자 '동주' 이후 두 번째 흑백 영화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 속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 인물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만들며 현시대까지 관통하는 가치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이준익 감독은 이번 '자산어보' 역시 시대를 관통하고 인물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연출로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화려한 색채를 배제해 인물이 가진 본질적인 형태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든 흑백의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깊어진 스토리텔링과 함께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등의 농후한 앙상블과 어울려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 명작을 탄생시켰다.


이준익 감독은 "사극이라고 하면 보통 거대한 사건, 정치적 이슈, 전쟁, 영웅 이야기 등이 주로 쓰인다. 물론 나도 해봤다. 그런데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수록 사건보다 사연에 더 관심이 쏠리더라"며 "누구나 아는 사건과 전개에 휘말리는 인간들의 군상,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이야기, 또 그 영웅에게 열광하는 관객들 등을 많이 봤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공된 설정보다 일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대물에서는 일상이 소소하게 표현되는 영화가 더러 있지만 사극에서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과연 있었나 싶었다. 일상에서 존재하는 인간이 진짜 인간이지 거대 사건에서 내몰려진 인간은 도구일 뿐이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일상을 통해 인간을 보여주는 게 더 올바른 것 같다. 그래서 접근하게 된 것이 정약전이었다"고 '자산어보'를 꺼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사극 대가답게 이준익 감독은 작품에 대한 정교한 고증으로도 정평이 자자하다. 그는 "우리가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역사에서는 '역덕'이 있다. 이른바 '역사 덕후'가 장난 아니다. 영화를 만들 때 실화를 바탕으로 고증하겠다고 하면 그 기대치와 잣대가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흔히 말해 '역덕'들에게 탈탈 털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실화 영화에서 고증을 자신 있게 반영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박열'의 경우는 '자산어보'와 달리 일본 서적이 아주 정교한 책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산어보'는 양면성이 있다. 정약용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지만 정약전은 많이 없다. 다만 정약전은 정약용과 같은 집안, 형제라는 부분에서 유추하기 용의했다. 정약전은 적당한 고증을 확보했고 창대는 실제 '자산어보' 서문에 이름이 적혀 있다. 허구로 창작해내기 적합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있을 때 영화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창대가 고증이 남아 있다면 그걸 의도적으로 바꿨을 때 왜곡, 날조된다. 그런데 창대는 이름만 있다. 우리가 허용치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허구할 수 있는 캐릭터다. 그게 진실되어 보이면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치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오프닝에 '서문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다'라는 고백을 한 것도 그 이유다"고 덧붙였다.



'자산어보'를 통해 첫 사극을 도전한 설경구에 대한 무한 신뢰도 드러냈다. 설경구는 극 중 흑산도로 유배된 후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학자 정약전을 연기해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준익 감독은 "설경구는 정말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남자다움도 있다.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올바름이 사극을 할 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 곱씹었다.

그는 "촬영 전 테스트 촬영을 할 때 설경구가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때 이미 설경구가 아니더라. 나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한방을 썼는데 어릴 때 내가 봤던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설경구에게 딱 있더라. 더이상 설경구에게 연기에 대한 잡스러운 대화가 필요 없더라. 그냥 설경구가 정약전이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똑같은 생각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물고기 잡는 것보다 글공부를 더욱 중시하는 청년 어부 창대 역을 맡은 변요한과 첫 호흡에 대해 "변요한이 어제(18일) 시사회에서 영화 후반부부터 우느라 영화를 못 보더라. 눈을 붙잡고 화면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격한 감정을 보였다. 평소 변요한은 말을 하는 데 있어서 화려한 수식을 잘 못 하고 스스로도 하기 싫어한다. 어제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가 좋아서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는데 '자산어보'를 촬영하면서도 온전하게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 지점이 변요한만이 가진 감성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창대 캐릭터에 변요한을 생각하지 못했다. 다 떠나 창대 캐릭터를 캐스팅하기 전 설경구가 정약전을 하는 게 내겐 더 중요했다. 설경구를 결정한 이후 창대 역을 캐스팅하려고 했다. 그러다 설경구가 정약전을 선택하고 이후 설경구가 변요한을 추천했다. 보통 감독들은 캐스팅할 때 시나리오 쓸 당시 배우를 구체화해서 쓰려고 하지 않는다. 훗날 캐스팅이 안됐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그런데 설경구의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떠올렸을 때 창대 캐릭터와 딱 붙는 느낌이 들더라. 설경구의 제안과 창대라는 인물의 구체적 상상이 매칭됐다. 아주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고 웃었다.

이어 '동주'에서 강하늘과 박정민, '박열'에서 이제훈, 그리고 '자산어보'에서 변요한까지 충무로를 이끄는 '30대 대세 배우'들과 연이어 호흡을 맞춘 것에 "그 친구들 모두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친구들이다.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친구들이다. 내가 저 친구들의 나이에는 저렇게 살지 못했다. 세 배우 모두 같으면서 너무 다르다. 직업이 배우고 대상이 영화일 뿐이지 비단 영화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 저만큼 다 잘할 사람들인 것 같다"고 애정을 전했다.


코로나19 블루로 지친 관객에게 온기와 위로, 응원을 전하는 '자산어보'는 지금 이 시기 관객에게 필요한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다. 이와 관련해 이준익 감독은 "사실 나의 바람을 관객에게 구체화하고 싶지 않다. '자산어보'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의 바람을 구체화해 된 적도 없다. 더구나 영화가 남는 방식은 나의 바람대로 더욱 된 적이 없다"며 겸손을 보였다.

그는 "나의 바람보다 그 이상 훌륭한 영화로 남아 나를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특히 이번 '자산어보'를 만들기까지 전작 '변산'이 흥행에 실패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반전으로 '변산'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작가가 '자산어보' 작가와 같은 김세겸 작가다. 김세겸 작가가 패자부활전 한 번 하자고 하더라. 지금은 그저 이 패자부활전이 성공적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소소한 바람을 전했다.

'자산어보'는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민도희, 차순배, 강기영, 그리고 정진영, 김의성, 류승룡, 조우진 등이 가세했고 '변산' '박열' '동주'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31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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