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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계엄령 하의 사북사태…"광부·진압경찰 모두가 피해자"

기사입력 2025-04-21 16:44

영화 '1980 사북' 특별상영회가 열린 지난 20일 영월시네마에서 사북 항쟁동지회 명예회장 이원갑(사진 왼쪽 두 번째) 씨가 진문규(맨 오른쪽)·이종환(오른쪽 두 번째)·최병주(가운데) 등 전 영월경찰서 소속 경찰들의 손을 잡고 화해하고 있다. [영화사 느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1980년 4월 22일 사북광업소로 통하는 안경다리에서 광부들과 진압경찰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져 이곳에서 영월경찰서 소속 이덕수 순경이 사망했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영화사 느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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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대립했던 그들 45년 만에 만나 부둥켜안고 "화해·용서"

'1980 사북' 특별상영회…"야만의 시대가 남긴 상처 서로 보듬길"

(정선=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계엄령이 내려졌던 1980년 4월 사북, 그곳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나. 야만의 시대가 할퀴고 간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1980년 4월 사북항쟁 45주년인 21일.

당시 광부 대표로 활동한 이원갑(84·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씨는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시네마 관람석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 두 눈을 감은 채 회상에 잠겼다.

영화 '1980년 사북' 특별 초청 영화제가 열린 이날 2곳의 상영관에는 이씨를 비롯해 110여명의 지역 주민과 현직 경찰 등이 숨을 죽인 채 영화를 지켜봤다.

4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야만의 시대가 할퀴고 간 상처는 각자의 가슴에서 지울 수 없었다. 상영 내내 영화관의 무거운 공기는 이들의 어깨와 가슴을 짓눌렀다.

사북항쟁은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던 1980년 4월 21∼24일 사북읍 소재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노조지부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광부들에게 경찰 지프차가 돌진해 치명상을 입힌 것을 계기로 일어난 대규모 유혈 사태다.

이 과정에서 영월경찰서 소속 이덕수 순경이 사망하는 등 진압에 투입된 다수의 경찰 역시 피해를 보았다.

광부와 부녀자 28명이 군사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폭력 사태로 인해 사건 관련자들은 오랫동안 '폭도'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왔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2008년 제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사북사건과 관련해 공권력에 의한 고문과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하고 국가 사과와 피해자 구제를 권고했다.

결국 2015년 이후 이씨를 비롯해 신경·강윤호 등 사건 관련자들이 재심을 통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북사건은 국가폭력 사건이자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으로서 새롭게 조명받았다.

하지만 사북사태의 피해자는 광부들만이 아니었다. 영화 1980 사북은 45년 전 탄광촌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사건을 관련자들의 증언과 아카이브를 통해 치밀하게 추적했다.

영화에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또 다른 피해자들이 출현한다. 그들은 '사북사태' 진압에 투입된 영월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다.

사북광업소로 통하는 안경다리 앞에서 광부들이 던진 돌에 맞아 이덕수 순경이 사망했고, 진문규씨를 포함해 60여 명의 경찰관들이 중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부상 경찰들은 광부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 당사자들조차 많은 것이 해명되지 않은 채 45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영화 '1980 사북'은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원규씨는 지난 20일 영월시네마에서 가진 첫 상영회에도 참석했다. 그날은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 부상을 입은 영월경찰서 소속 전직 경찰인 진문규(72)·이종환(74)·최병주(85)씨도 있었다.

이씨는 영화 상영 직후 전직 경찰들에게 "이제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우리가 던진 돌에 경찰이 죽고 다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사과의 편지를 낭독한 뒤 손을 내밀었다.

이에 전 경찰 이종환씨는 "이제는 용서하고 화해하자"며 이씨를 부둥켜안은 채 뜨거운 포옹으로 화해의 순간을 완성했다.

영화 '1980 사북' 박봉남 감독은 "서로 반대편에 서서 날카롭게 대립했던 광부와 경찰 모두 부당한 계엄의 시대가 할퀸 상처를 안고 있는 피해자들"이라며 "이 영화를 통해 그 야만의 시대가 남긴 상처를 서로 보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별 초청 상영회는 오는 26일과 27일 각각 오후 3시에도 이어진다.

jle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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