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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K-lit'이 익숙한 단어가 될 때까지

기사입력 2025-05-12 14:15

(서울=연합뉴스) [재배포·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한국인이 흥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눈만 돌리면 노래방이 보이는 나라도 흔치 않다. 문화적 소양과 끼가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찢어지게 못 살던 후진국 시절에도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을 배출할 만큼 예술적 DNA가 내재해 있다. K팝의 약진은 대표 성공 사례다. 반대로 흥이 많다는 건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친 성향을 대변하기도 한다. 다만 음악, 미술 등에 비해 문학은 좁은 땅 안에 갇혀 있었다. 번역의 한계, 아시안 마이너리티의 핸디캡 등이 작용했지만, 세계인의 시각에서 지역적이고 이념 지향적으로 보인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로컬 문학이랄까. 20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실천문학에 대한 다소 교조적 집착은 문학의 다양성과 예술성을 저해했고 책을 읽지 않는 국민성도 문학과 출판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책을 안 읽으면 작가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특히 실용서가 아닌 순수문학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멸종위기종이 됐다. 그 대신 사람들의 손엔 휴대전화가 자리했고 쇼츠가 우리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문학의 길에 꿈을 건 젊은이들이 계속 나오는 건 인간의 본성인 듯싶다. 이들은 우리 문학도 K팝처럼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우게 한다. 'K-lit'도 'K-pop'처럼 익숙한 단어가 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특히 젊은 작가 중 과학소설(SF), 서스펜스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며 고유한 작품 세계를 정립 중인 이들이 늘어나는 일은 고무적이다. 김초엽, 김보영, 천선란 등이 대표적인 차세대 기수다.

이들 중 천선란의 SF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이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된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출판 브랜드 허블에 따르면 '천 개의 파랑'은 미국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 픽처스와 영화화 계약을 했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듄' 시리즈 등을 만든 메이저 제작사인 만큼 천선란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판권료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꽤 거액으로 알려졌다. 2020년 출간된 '천 개의 파랑'은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았고 10여개 국에 판권이 수출됐다. 이 작품은 휴머노이드 기수와 경주마 사이의 우정과 공감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이야기를 주변부에 담았다. 이런 구도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성의 정의, 인류의 미래에 대한 보편적이고 범세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로컬 문학의 한계는 애초에 배제한 채 종(種)을 넘어선 약자들의 연대를 따뜻한 SF로 그려냈다. 한국형 뱀파이어 이야기를 담은 천선란의 장편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의 할리우드행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제 우리 작가들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세계 엔터테인먼트 중심인 할리우드로 달려가고 있다. 김보영도 미국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와 여러 작품의 판권 계약을 하며 관심을 받은 끝에 할리우드 진출 소식을 알렸다. 김보영의 SF 장편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영화화를 위한 각색 작업에 '듄'의 각색을 맡은 에릭 로스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행의 물꼬는 믿고 보는 중견 작가 편혜영이 사실상 텄다. 그의 장편 '홀'은 김지운 감독의 두 번째 미국 진출을 위한 원작이 됐고 영화화 과정에 할리우드 제작진이 대거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천만 영화를 심심찮게 만들어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급성장 속 갈수록 관객의 외면을 받는 국내 영화계도 이렇게 원작의 질을 중시하는 할리우드의 기본기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극장을 찾는 관객은 이제 뻔한 클리셰로 범벅 된 조폭 영화, 정치 영화, 검사 영화는 그만 보고 싶은 것 같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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