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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생거진천'(살기는 진천이 좋다)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자연이 넉넉하고 평화로운 충북 진천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농다리가 있다.
싱그러운 연둣빛 신록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초평호는 여행자의 피로를 달래주고 있었다.
◇ 가장 오래된 자연석 돌다리…농다리
자연석만을 쌓아 올려 만든 돌다리가 천년을 간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충북 진천의 농다리는 자연석을 쌓아 올리기만 했는데 견고하여 천년 세월을 버텨 오고 있다.
진귀한 이 다리의 축조 비밀은 '대바구니 원리'이다. 대바구니를 성글게 짜면 물이 술술 잘 빠져나간다.
돌과 돌 사이를 접착제로 메꾸지 않고 비워 둠으로써 홍수가 져도 물이 잘 빠져나가게 한 것이 이 소박한 다리가 반영구적으로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농'의 한자는 '籠'(대바구니 농)이다.
조선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다리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경주 불국사의 청운·백운교와 연화·칠보교, 개성의 선죽교, 농다리, 함평 고막석교가 모두라고 한다.
이중 농다리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든 다리로는 가장 오래됐다.
충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농다리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행인이 밟고, 건너고 있다.
강의 이편과 저편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큰물이 져서 간혹 교각 일부가 허물어지면 보수 작업이 행해진다.
보존과 관리의 대상으로, 눈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문화재나 유적과 비교할 때 사뭇 다른 양상이다.
농다리의 길이는 약 100m. 교각은 27개이고, 물이 빠져나가는 교각 사이 수문은 28개이다.
우리 조상들이 밤하늘의 별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던 28개 별자리를 각 수문은 상징한다.
선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농다리 교각 하나를 건널 때마다 별자리 하나를 지나는 셈이다.
농다리 교각은 물살의 저항을 적게 받도록 유선형으로 설계돼 있다.
길이 30∼40㎝의 사력암질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 다리 위를 밟으면 돌들이 약간씩 움직인다.
쌓아 올린 돌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포개져 튼튼하다. 오랜 장마에도 다리가 유실되지 않도록 만든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붉은 색깔의 자석(紫石)을 깨 만든 농다리는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지네가 몸을 꿈틀거리며 물을 건너는 형상을 띠고 있어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농다리는 멀리서는 징검다리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징검다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각 및 상판의 높이가 높다.
과거에는 교각 높이가 사람 키를 넘었다고 하나, 강바닥의 퇴적물로 인해 현재는 높이가 상당히 줄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미호천은 수량이 많아 물살이 제법 거세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자연석으로 만든 농다리를 건널 때는 넘어져 물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옛적에, 진천에서 증평, 괴산, 청주로 가려면 미호천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농다리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농다리가 천 년 역사를 이어오는 것도 실생활과 밀접한 시설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조홍제 진천군 문화관광해설사는 귀띔했다.
농다리를 방문한 탐방객은 지난해 170만여 명에 이르렀다. 국립공원을 제외하면, 이처럼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는 많지 않다.
방문객이 몰리는 주말과 휴일에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 임시 부교를 설치해 다리를 건너려는 인파가 분산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볼거리, 즐길 거리를 풍부히 하기 위해 만든 인공폭포, 징검다리도 눈에 띈다.
◇ 초평호와 농다리를 잇는 초롱길
농다리를 건너면 초평호로 향하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초평호의 '초' 자와 농다리의 '농' 자를 따 초롱길로 이름 지어진 이 길은 평화롭고 청정한 초평호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농다리에서 시작해 초평호미르309 출렁다리, 하늘다리를 지나 농다리로 되돌아오는 경로는 1시간∼1시간 반 걸리는, 쾌적한 길이다.
초평호 둘레길들 중 대표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중간에 황토 맨발 숲길을 거닐 수도 있는데, 이 경우 2시간∼2시간 반 정도 걷게 된다. 황토맨발길은 왕복 1.8㎞이다.
맨발 걷기에 열중한 지역 주민,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황토의 차갑고 촉촉한 기운이 따가운 햇살로 더워진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초평호미르309 출렁다리는 지난해 완공된 '신상' 명소이다. 길이가 309m로, 무주탑 출렁다리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
이 다리를 건널 때 펼쳐지는, 탁 트인 호반 풍광은 오래 기억될 듯하다. '미르'는 용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초평호 지형이 공중에서 보면 승천하는 용의 형상이라고 하여 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숲을 미르 숲이라고 이른다.
초평호반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교량이 하늘다리이다. 309 출렁다리가 완공되기 전까지 진천의 대표 관광 명소였다. 지금도 운치가 여전하다.
농다리와 초평호를 감상할 수 있는 산책길, 등산로는 여러 갈래로 조성돼 있었다.
인공폭포 옆으로는 고즈넉한 메타세콰이어길이 미호천을 따라 나 있고, 한반도지형전망공원으로 올라가는 전망대길도 인기를 끄는 탐방로이다.
이 공원에서 내려다보면 초평호 중간에 있는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강원도 영월, 양구 등에 한반도 지형이 몇 있지만 초평호의 이곳이 한반도 형상에 제일 가깝다고 한다.
반도 모양의 땅 위쪽에는 중국, 아래쪽에는 제주도라고 쳐도 좋을 육지와 작은 바위섬이 있었다.
초평호는 발전용을 제외하고, 영농 저수지로는 충북에서 가장 크다.
골프 바람이 불기 전, 낚시가 야외 레저 활동의 꽃으로 대접받던 시절에 초평호는 낚시 '성지'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지금도 중부권 최대 낚시터로 꼽히는 초평호에는 붕어, 잉어, 가물치, 뱀장어 등이 풍부하다.
초평붕어마을은 담백한 붕어찜 등 붕어 특화요리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 현대에도 유효한 '생거진천'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는 옛말은 살아서는 진천 땅이, 죽어서는 용인 땅이 기거하기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만큼 예부터 진천은 살기 좋은 고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는 진천에 물이 풍부하고 농토가 넓어 먹거리가 넉넉한 데다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가 적었던 데서 유래한다.
진천이 살만한 곳이라는 평가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지방소멸 우려가 높지만, 진천은 시 승격을 바라볼 정도로 인구가 많다.
군 단위 행정구역으로는 드물게 인구가 9만명에 육박한다. 인구는 18년째 증가 행진 중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1.12명이었다. 전국 평균보다 1.5배 높은 수치이다.
혁신도시 지정 등을 계기로 산업 활동과 인구 유입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대개 경주나 김해 출신으로 여기는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595∼673)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참여해 국권회복을 호소했던 이상설(1870∼1917), 고려 중기의 권신으로 대몽항쟁을 이끌었던 임연(?∼1270) 등이 진천에서 태어났다.
가사 문학의 대가 정철(1536∼1593), 김홍도의 스승으로 서화의 대가였던 강세황(1713∼1791)의 묘소가 진천에 있다.
조선 시대의 이름난 효자로, 세종 임금이 칭송하고 삼강행실도에 그 효행이 실린 김덕수(1373∼1448)의 묘도 진천에 있다.
진천이 낳은 인물들을 기리는 동판이 농다리 가는 길목에 놓여 있었다.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마음의 다리일까. 그런 다리를 농다리처럼 오래 가도록 하는 지혜는 있을까.
화사한 햇살 아래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농다리를 건너는 사람의 행렬이 정겹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