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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덕 '동승' 재창작…이철희 연출 "나는 뜨거워본 적 있나 돌아보길"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34년 전 '동승'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젊은 혈기에 '이건 나밖에 못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내가 이랬지, 이랬었어' 하는 회한이 들어요."
국립극단 연극 '삼매경'에 출연하는 배우 지춘성은 34년 전 스물다섯의 나이로 선보였던 본인의 연기를 뛰어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
1991년 '동승'에서 도념을 연기해 '영원한 동승'이란 찬사를 받은 그에게 다시 도념이라는 배역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같은 역할을 다시 맡게 된 지춘성은 책임감과 영광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며 전보다 발전한 연기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지춘성은 7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춘성이 완벽하게 표현하려 했던 진짜 도념이 되고자 한다"며 "연출의 지시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각성하며 조금은 고달프지만, 흔쾌히 즐겁게 작품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17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삼매경'은 함세덕의 작품 '동승'을 원작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원작 '동승'은 깊은 산 속에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자승 도념의 이야기를 그렸다. 1939년 초연된 이후 영화로 각색되는 등 고전으로 널리 읽혔다.
지춘성에게는 제15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과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인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그는 "제 삶은 '동승'으로 인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도 "다시 들여다보면 그 작품에서 정말 도념이로 분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삼매경'에서 지춘성은 34년 전 맡은 도념 역할을 실패라고 여겨 연극의 시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배우 본인을 연기한다.
그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혼재된 삼매경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맡았던 도념을 연기한다. 극중 배역명도 도념으로 표기한다.
지춘성은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역에 몰입해 격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연습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울음이 나오는 때가 있다"며 "1991년 당시에도 눈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때가 있었는데, 이 작품을 하면 매 순간 격정을 참으려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재창작과 연출은 '맹', '조치원 해문이' 등 고전을 재조명한 작품을 선보여 온 연출가 이철희가 맡았다. 이 연출은 지춘성 배우가 '동승'이란 고전 작품을 다시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작의 도념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면, 지춘성 선생님의 안에는 연극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실패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두 가지 마음을 병치해서 선보이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완성도 높은 고전 '동승'에 새살을 덧댄 이 연출은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이 고전을 감상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외국 고전이 자주 각색돼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국내 희곡도 자주 관객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선배 극작가들이 인물을 다루는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를 포함한 젊은 작가들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깊고 폭넓다"며 "선배들의 좋은 글을 오늘날 관객과 만나게 하는 것이 우리 자부심을 키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연출은 무엇보다 '삼매경'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뜨거운 진심이 관객에게 닿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 지춘성의 무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관객들이 '나는 이렇게 뜨거워본 적이 있었나?' 하는 질문을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cj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