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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APEC이 기억할 경주, 한류의 원천 ① 신라 천년·미래 천년

기사입력 2025-09-04 08:10

경주 시내와 대릉원[사진/백승렬 기자]
천마총 출토 금관[사진/백승렬 기자]
경주 계림로 14호 고분 출토 황금보검[사진/백승렬 기자]
중앙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신라 뿔잔[사진/백승렬 기자]
성덕대왕 신종 비천 문양[사진/백승렬 기자]
불국사 [사진/백승렬 기자]
공중에서 본 석가탑과 다보탑[사진/백승렬 기자]
석가탑 쪽 회랑에서 본 석가탑과 다보탑[사진/백승렬 기자]
토함산과 석굴암[사진/백승렬 기자]
석굴암 본존불[국립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첨성대[사진/백승렬 기자]
신라가 추구했던 혁신과 세계화는 현재 진행형

(경주=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천년 국가' 신라(서기전 57∼935년)의 국호에 담긴 참뜻은 혁신과 세계화이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을 아우른다'는 뜻의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이라는 이상에서 유래한 국호가 '신라'(新羅)이다.

신라가 추구했던 혁신과 세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를 매혹하는 한류의 뿌리는 신라에 닿아 있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신라는 현대와 소통하고, 세계와 만난다.

APEC 정상들은 한류 원천 도시인 경주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 '경주에서 로마까지'

실크로드의 출발지 신라는 '황금의 나라'

고대 동서양 교역로였던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시작해 로마에서 끝나는 길이었을까?

실크로드의 출발지는 중국이 아니라 아시아 동쪽 끝인 신라의 경주라고 봐야 한다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8∼9세기 신라 귀족들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유행하던 장식품, 보석류, 공예품을 사용했다는 최근 연구 성과와 로마에서 신라까지 교역품 수송이 육로로 6∼8개월이면 충분했다는 것이 이 학설의 주된 근거이다.

경주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면 로마제국이 수출했던 유리 세공품인 로만글라스, 서역인 모습의 토용, 중앙아시아 소그드인 마부상 등을 볼 수 있다.

경주 원성왕릉(괘릉) 등 일부 신라 고분의 무인상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반도 남부에 남아 있는 인도, 아라비아와의 교역 흔적도 이 학설을 뒷받침한다.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인도 공주라는 설화가 대표적이다.

'해상왕' 장보고가 동북아 해상 교역을 주도했을 정도로 신라의 무역이 활발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라는 교역 상대국에 '황금의 나라'로 알려졌다.

'일본 서기', 고대 아라비아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가 846년 펴낸 '제 도로 및 제 왕국 안내서'에는 황금이 많이 나는 나라로 신라가 묘사돼 있다.

전 세계에서 출토된 고대 금관 20여 점 중 6점이 신라의 금관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기록이 헛말이 아님을 방증한다.

신라금관 6개가 발굴 10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전이 APEC 기간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다.

경주박물관은 APEC 정상들의 만찬장이다. 각국 정상과 배우자들은 화려하고 섬세했던 한류의 뿌리를 실감할 것이다.

'에밀레 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을 정상들 앞에서 타종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완성도 높은 예술품인 이 큰 종은 보존을 위해 경주박물관에 옮겨진 뒤 좀처럼 타종되지 않는다.

종은 크기, 모양, 재질에 따라 그 소리가 천차만별이다.

크고 무거운 한국 사찰의 범종 소리는 서양 성당이나 수도원의 댕그랑거리는 종소리와는 시쳇말로 '급이 다르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잔별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나 막 어둠이 내릴 때 이 골짝 저 골짝 넘어 은은하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산사 범종 소리를 듣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깊이를 잊지 못한다.

성덕대왕 신종 타종이 확정되면 평화와 영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며 지레 마음 설렐 불자와 예술인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넣었기 때문에 종의 소리가 마치 '에밀레' 하고 어미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소리처럼 들리게 됐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은 이 종소리가 얼마나 신비스러운가를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리라.

◇ 세계가 잊지 못할 경주

지붕 없는 박물관

전국 최고의 '핫플레이스' 황리단길 옆으로 산재한 거대한 능묘들. 현란한 현대의 삶 속에 고대의 죽음이 고즈넉이 공존하는 모습은 경주만의 풍경이다.

로마, 파리, 런던, 이스탄불 등 유적 도시들이 많지만, 아파트와 주택가 한가운데 작은 언덕만큼 큰 고분 150여 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광경은 세계 어디에도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 구석구석에 석탑, 사찰, 조각 등 유적지와 문화재가 널려 있는 경주는 지금도 땅을 파면 고대 유물들이 출토된다.

유네스코는 약 반세기 전인 1979년에 이미 경주를 세계 10대 유적지로 꼽은 바 있으며,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남산 지구, 월성 지구, 대릉원 지구, 황룡사 지구, 산성 지구 등 5개로 구성된 유적지구는 사실상 경주시 전체를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는 산, 바다 등 자연경관 지역이 아닌 시가지임에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사적형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주는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살아있는' 등의 수식어가 제격인 박물관이다.


APEC이 열리려면 한 달 이상 남았는데도 내외국인 여행자와 방문객들은 이미 경주에 매료된 듯 유적지와 관광지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올해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경주는 글로벌했던 신라의 교역에 걸맞게 고대에 세계적 규모의 도시였다.

경주에는 전성기에 17만8천936 가구가 살았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가구 구성원을 평균 5명으로만 잡아도 경주의 인구는 100만 명이 넘는다.

8세기에 인구 100만 명 규모의 도시는 콘스탄티노플, 장안, 바그다드밖에 없었다. 경주는 세계 4대 도시였던 셈이다.

◇ 최고 걸작 혹은 유일한 유산들

한국 대표 문화재, 세계 최고로 평가되는 예술품,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 등 경주가 간직한 걸작들이 여행자들에게 남기는 여운은 길다.

불국사는 경복궁과 함께 한국의 대표하는 건축 문화재이다.

석가탑은 '석탑의 나라'라 불리는 한국에서 제일 한국적인 석탑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다보탑은 화려함과 조형미에서 석탑 중 으뜸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세계에서 예술적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화강암 불상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경주 감포 앞바다의 문무대왕릉은 세계 유일의 수중 왕릉이다.

◇ 불국토를 구현한 불국사, 그리고 석가탑과 다보탑

'불국'(佛國)은 '부처의 나라' 즉 불교적 이상향을 뜻한다.

신라인들은 신라가 불국토라고 믿었고, 불국사에는 그들이 상상했던 이상향이 구현돼 있다.

불국사에는 청운·백운교 등 국보가 6개에 이른다.

불국사에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끈 조형물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돼지상이었다.

인증사진을 찍으며 터뜨리는 웃음보에서는 경건과 해학이 함께 묻어났다.

무설전 법당 안에 전시된 석가모니 진신사리도 갈 길이 바쁜 여행자의 발길을 끌었다.

석가탑은 그 자체로 중요한 유산이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굴된 문화재여서 더 각별하다.

불교에서 석탑은 화장한 부처의 유해를 모시는, 일종의 무덤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석탑은 부처와 동일시돼 참배의 대상이 된다.

부처 사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사리 대신 석탑에 넣기도 한다.

다라니경은 부처의 사리를 대신한 성물이었다.

작은 두루마리에 부처의 가르침을 깨알같이 인쇄한 다라니경은 간발의 차로 도굴을 면한 사건을 겪었다.

당시 도굴을 막지 못했더라면 인류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 기록은 사라질 뻔했다.

현재 유통 중인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인 10원 동전의 앞면에 새겨져 있어, 그 존재를 모르는 국민이 없는 다보탑은 비극을 피하지 못한 사례에 해당한다.

일제가 무단으로 해체, 복원했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해체했는지, 탑 속에서 어떤 유물을 발견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탑의 일부 장식물이 사라지고 원형과 달리 복원된 정황이 있으나 해체 이전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원형 복원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다보탑은 풍부한 한반도 석탑 문화를 웅변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 좌우에 나란히 배치된 석가탑과 다보탑은 각각 소박한 절제미, 화려한 조형미를 대표하는 듯, 조화로운 동시에 대조를 이루며 서 있다.

두 탑을 바라볼 때 '나는 석가탑형일까, 다보탑형일까' 혹은 '두 탑 중 어떤 게 더 걸작이지?' 같은 부질 없는 질문이 뇌리를 스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지 싶다.

그만큼 두 탑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예술을 표현하고 있었다.

◇ 동아시아 불교 예술의 걸작, 석굴암

안개를 삼키고, 또 토해낸다는 토함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의 불상과 석실은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설악산, 북한산, 월출산 등 한국의 산들을 명산으로 만드는 엷은 회색빛 화강암은 서양에 흔한 대리석에 비해 훨씬 단단해 조각하기가 매우 어렵다.

화강암을 능숙하게 다뤄 제작한 본존불, 사천왕상, 인왕상, 십일면관음보살상, 나한상 등 석굴암의 조각은 통일 신라 예술의 정수이자, 동아시아 불교 조각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시에 엄숙함을 느끼게 하는 본존불은 이 세상에 없는 완벽한 조화를 실현했다는 찬사를 듣는다.

360여 개의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석굴암의 건축 기법 역시 세계에 유례없는 탁월한 기술이다.

◇ 천 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세계 유일 고대 천문대

선덕여왕(632∼647) 때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는 첨성대는 1년을 상징하는 365개가량의 화강암 돌로 만들어져 있다.

돌의 개수는 세는 방식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첨성대는 과학적인 구조로 인해 천 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개·보수되거나 복원을 거치지 않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고대 천문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시설이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고대에는 천문 관측과 하늘에 대한 제사가 불가분의 관계였음을 고려하면 첨성대가 인류 최초의 천문 관측대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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