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파도의 걸작' 하조대 품은 해파랑길42코스

기사입력 2025-11-07 08:31

[사진/임헌정 기자]
해파랑길 42코스 해변길 [사진/임헌정 기자]
해파랑길 42코스 38선 휴게소 부근 [사진/임헌정 기자]
양양 새활용센터에 전시된 '새활용품'들 [사진/임헌정 기자]
하조대 전망대 앞[사진/임헌정 기자]
38선 휴게소 [사진/임헌정 기자]
죽도정 [사진/임헌정 기자]
죽도 해변의 서퍼들 [사진/임헌정 기자]
기사문 해변 서퍼들 [사진/임헌정 기자]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진 해파랑길 750㎞의 대표 코스

(양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사무치도록 푸른 바다, 압도하는 기암절벽,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이 어우러진 절경.

하조대는 바다 비경이 펼쳐지는 동해안의 대표 명승이다.

해파랑길 42코스는 강원도 양양군 제5경인 하조대와 제6경인 죽도정을 잇는 아름다운 바닷가 길이다.

◇ 대한민국 걸어서 한 바퀴…코리아둘레길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해 부산 오륙도를 향해 걷는 중이에요. 해파랑길에 이어 남파랑길, 서해랑길을 걸어 강화도에 도착하면 'DMZ 평화의 길'을 거쳐 다시 고성까지 갈 예정입니다."

하조대 정자 앞에서 만난 권우섭(33) 씨는 동·서·남해안과 DMZ 접경지역을 하나로 연결하는 코리아둘레길을 걷는 중이었다.

전 구간 완보(完步)에 10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필수품이 든 듯한 배낭은 빵빵했으나 발걸음은 다부지고 가벼워 보였다.

코리아둘레길은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 DMZ 평화의 길로 이루어진다.

한국 외곽을 둘러싸는 이 길의 거리는 약 4천500㎞이다.

해파랑길이 2016년 5월 제일 먼저 개통됐다.

'대한민국을 재발견하며 함께 걷는 길'. 광역지자체 10개, 기초 지자체 78개가 함께 만든 코리아둘레길의 비전이다.

국토 재발견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뚜벅이'들이 적지 않다.

여행사 등이 고객을 모아 단체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봄, 가을에는 이 길을 걷는 뚜벅이들이 늘어난다.

지자체를 포함해 공적 기관이 코리아둘레길 곳곳에서 여는 걷기 행사는 연간 100여건에 이른다.

전체 코스 완보 사례도 제대 후 복학을 앞둔 대학생을 중심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드물지 않다.

올해 10월 현재 코리아둘레길 1개 코스 이상 완보 인증자는 5만여명으로 집계됐다.

◇ 청정 동해 감상하며 걷는 해파랑길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50개 코스, 약 750㎞에 걸쳐 이어진다.

해파랑길 1코스 시작점인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출발해 고성을 향해 올라갈 수도 있고, 반대로 고성에서 출발해 부산을 향해 내려갈 수도 있다.

해파랑길 1코스는 이기대, 광안리, 해운대를 품고 있어 경치가 빼어난 데다 부산 주택가와 도심에서 접근하기 쉬워 뚜벅이들로 붐빈다.

해파랑길의 '간판' 코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코리아둘레길 걷기 도전을 시작하기에 무난한 곳이 해파랑길이다.

길이 험하지 않고 도보 여행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해수욕장, 명승지 등 관광지가 즐비한 동해안은 숙박시설, 식당, 카페, 편의점이 곳곳에 있어 '여행자 친화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허기지면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고, 지치면 숙소 잡기가 쉬우며, 여행 물품 구입도 어렵지 않다.

길의 난이도도 상·중·하 가운데 경사도가 낮은 '하'에 해당한다.

초행길이라고 해서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코리아둘레길을 안내하는 '두루누비' 홈페이지에 가면 코스 정보가 풍부하다.

휴대전화에 '두루누비' 앱을 깔면 길 잃을 염려를 내려놓아도 된다.

앱의 '따라가기' 기능이 경로 이탈을 경고해주기 때문이다.

코스에 마련된 스탬프를 찍어 완보를 인증할 수 있다.

따라가기 기능이 켜져 있으면 스탬프를 찍지 않아도 자동 인증된다.

여행자센터인 '코둘 쉼터'는 꽤 유용하고 쾌적하다.

쉼터를 지키는 길동무(트레킹 가이드)로부터 안내나 해설을 들을 수 있고, 쉬거나 짐을 보관할 수도 있다.

긴급한 물품의 택배 수령지로 쉼터를 활용하는 여행자도 있다.

코둘 쉼터는 30여 곳 설치돼 있다.

해파랑길 42코스에서 가까운 양양새활용센터에서 코둘 쉼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양양새활용센터는 재활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쓰레기를 새 물건으로 만들어 활용하거나 판매하는, 이채로운 환경 보호 센터였다.

가령 수입 양주, 포도주 병 등은 제조회사에 의해 수거되지 않아 일반 쓰레기처럼 매립된다.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플라스틱보다 8배 길다. 센터는 이런 쓰레기의 매립량을 줄이기 위해 이것들을 화분, 접시, 액세서리 등으로 '새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교육하고 있었다.

◇ 잊지 못할 '비경' 하조대



깎아지른 듯한 벼랑 끝으로 내려다보이는 비췻빛 바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부서지는 포말.

오랫동안 기억에 저장되는 동해 비경의 이미지이다.

하조대는 부산 태종대처럼 동해안 절경의 전형을 선보인다.

해파랑길 42코스의 북쪽 끝이 하조대이고, 남쪽 끝이 죽도정이다.

중간에 기사문항, 38선휴게소, 동산해수욕장, 동산리 전망대가 있다. 거리는 9.7㎞.

길의 해발 고도는 최저 0m이다. 바닷가라는 뜻이다.

최고는 35m이다. 거의 평지여서 걷기 어렵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조대는 조선 개국에 큰 공을 세운 하륜과 조준이 노년을 보내며 은거한 곳이라 하여 그 둘의 성을 따 이름 붙여진 정자이다.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탄 뒤 다시 건립됐다.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바위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200년 넘도록 생명력을 이어가는 '애국송'이 정자에서 보였다.

온몸으로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이 소나무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영상의 배경 화면에 단골 등장한다.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하조대 가까이에 1962년 세워진 무인 등대가 있었다.

하조대 전망대에 서면 하조대해수욕장, 중광정해수욕장, 동호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해변들은 행정구역으로는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는 수 ㎞에 걸쳐 하나로 이어져 있다.

국내 최장 모래 해변이 아닐까 싶었다.

중광정해수욕장과 동호해수욕장 사이에 서핑 명소인 서피비치가 있었다.

맑은 날이면 설악산 대청봉도 전망대에서 조망된다.

백두대간과 동해의 기상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 하조대 전망대였다.


◇ 분단 현실 환기하는 38선 휴게소

동해안 북위 38도 지점에 있는 휴게소에 한 번쯤 방문하지 않은 여행객은 별로 없을 듯싶다.

초중고교 수학여행 코스에 흔히 포함되는 곳이다.

1945년 8월 광복 때 미국과 소련이 일본 점령지의 전후 처리를 위해 설정했던 임시 군사 분계선이었던 38선은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며 당시 12개의 강, 75개 이상의 샛강을 단절시켰다.

181개의 작은 우마차로, 104개의 지방도로, 8개의 상급고속도로, 6개의 남북간 철도도 끊겼다.

안내판에 적힌 설명이다.

38선이 집을 가르고 지나간 사례가 분단의 비극으로 언급되던 것이 떠오른다.

'부엌은 남한, 마루는 북한' 하는 식으로 분단된 어이없는 경우 말이다.

한국전쟁 후 1953년 체결된 휴전 협정으로 38선은 휴전선으로 대체된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남쪽으로 밀렸던 한국군이 북진하면서 양양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950년 10월 1일을 기념해 국군의 날이 제정됐다는 게 이곳 지역민들이 믿는 국군의 날 유래이다.

◇ 서핑 '메카' 양양

죽도정은 둘레 1㎞, 해발 53m의 죽도에 자리 잡고 있다.

죽도는 옛날에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와 이어져 있다.

양양 6경으로 꼽힐 만큼 운치 있는 죽도정은 오래된 유적이나 문화재가 아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1965년 지은 휴식처이자 일출 명소이다.

죽도 해변에서는 파도와 염분에 의해 바위 표면이 갈라지고 구멍 난 사포니 지형이 눈길을 끌었다.

선녀탕, 부채바위, 신선바위에는 접시나 주먹만 한 구멍들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최근 유행하는 볼더링에 딱 맞는 자연 암벽장처럼 보였다.

실제로 볼더링 동호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볼더링은 높지 않은 바위를 밧줄 없이 맨손으로 오르는 암벽 등반이다.

죽도정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 있는 죽도해변과 남쪽의 인구해변은 양양의 유명한 서핑 해변 중 '원조'에 해당한다.

양양의 서핑 해변은 현재 6개에 이른다.

여름을 지난 지 오래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날이었지만 파도타기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적은 강원도에서도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 양양군이다.

주민은 3만명에 못 미친다. 그렇지만 남설악, 오색, 연어가 회귀하는 남대천을 끼고 있는 양양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고장이다.

요즘 양양은 젊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활력이 넘친다.

서핑 때문이다. 파도 타는 사람들로 인해 작은 어촌 풍경이 바뀐 지 10여년 됐다.

해파랑길 42코스에서는 서피비치, 38선휴게소 앞 기사문해변, 죽도해변에서 서퍼들을 볼 수 있었다.

해파랑길 42코스는 '서핑로드'와 거의 겹치고 있다.

서핑로드는 서피비치에서 인구해변까지 서핑으로 활성화된 해변을 말한다.

서핑로드에는 서핑용품점과 함께 세련된 카페, 식당, 펍 등이 즐비했다.

국내 서핑용품점 중 3분의 1가량이 서핑로드에 있다고 하니 서핑 '성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양양 해안은 수심이 얕고 해변이 넓어 서핑 즐기기에 알맞은, 높은 파도가 발생한다.

양양이 서핑 '메카'로 부상한 배경이다.

곧 겨울이 닥친다. 하지만 서핑은 계속될 전망이다.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이곳 파도 질이 서핑 즐기기에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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