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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배우 김유정이 우리가 알고 있던 '국민 여동생'의 반짝이는 모습 뒤에 감춰져 있던 어린 시절과 사춘기, 그리고 연기에 대한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유정의 연예계 인생은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됐다. 그 유명한 크라운산도 광고가 출발점이었다. 김유정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마 다섯 살쯤이었을 거예요. 그 광고가 크게 사랑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광고, 어린이 프로그램, 영화 단역까지 이어졌다"고 말했고 정재형은 "그때는 CF 모델이 최고 인기의 상징이었다. 그런 자리 한가운데에 꼬맹이가 떡 하니 있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고, 김유정도 "어디 가면 '어떻게 이렇게 생긴 아이가 있지' 하는 반응이 많았다더라"고 웃었다.
"한글도 대본으로 배웠다"고 말한 김유정은 "제가 글을 완전히 알기도 전이라, 엄마나 어른들이 옆에서 대본을 읽어주시면 그걸 통째로 외워서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 '저기서 뭐라고 하면 넌 이렇게 말하면 돼' 이런 식으로요.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과 언어에 익숙해졌고, 그래서인지 국어는 정말 잘했다"고 고백했다.
김유정도 평범한 학생처럼 학교에 다녔다. 다만 그 과정이 조금 남달랐을 뿐이다. 그는"초등학교를 세 군데 다녔다. 이사도 있고, 촬영도 있고… 어쩌다 보니 계속 다른 동네 학교를 다니게 되더라. 새 학교에 갈 때마다 운동장과 복도는 '실물 영접'에 가까운 반응으로 술렁였다. 처음 전학을 가면 애들이 '야, 걔 아니야?', '유정이다!' 이러면서 캐릭터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다들 막 저를 구경하듯이 봤다"며 "솔직히 그때는 그게 싫었다. 친구들이 나를 다르게 보는 느낌이 너무 느껴지니까… 좀 피곤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친해진 친구들은 결국 그를 "연예인"이 아닌, 그저 "같이 떠들고 웃는 친구"로 받아들였다. 김유정은 "처음 난리가 나고 나면, 조금 지나서 친해졌을 때는 그냥 똑같은 친구로 대해줘서 그땐 또 학교가 정말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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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동생' 이미지와 달리, 김유정의 사춘기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정확히 14살쯤부터였던 것 같아요. '해를 품은 달(해품달)' 즈음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이건 전쟁인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며 스스로를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김유정은 "어느 날은 방에서 거의 한 달 동안 안 나온 적도 있어요. 불도 꺼놓고, 그냥 누워서 '나는 누구인가', '난 어떤 성격이지' 이런 생각만 계속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시기에 그가 맡은 작품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를 품은 달'을 시작으로, 영화 '비밀', 드라마 '앵그리맘', 영화 '우아한 거짓말' 등 학교폭력 피해자, 살인마의 딸, 죄책감과 외로움에 휩싸인 인물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는"전에는 선배님들이 '캐릭터가 나랑 동화돼서 빠져나오는 데 힘들었다'고 이야기하시면 잘 이해를 못 했다. 근데 그 시기에 그런 무거운 역할들을 하다 보니, 그 말이 뭔지 몸으로 되게 느껴졌다"며 촬영이 끝난 뒤에도 캐릭터의 감정이 오래 남아, 현실의 김유정과 극 중 인물을 구분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는 날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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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힘들었다'는 걸 나중에야 인지하게 된 거지, 그 당시엔 그냥 맨날 일만 했던 것 같다. 학교, 촬영장, 또 학교, 또 촬영장… 이런 식이었다"고 말한 김유정은 "어린 시절의 선택은 대부분 부모님의 것이었다면, 10대 중·후반부터는 내 선택의 비중이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결국 김유정은, 그 힘든 시기를 지나 지금의 자신을 만든 가장 큰 자산이 "결국 연기 그 자체"라고 말했다. 아역 시절부터 우리가 지켜봐 온 '국민 여동생' 김유정은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적어도 그 고민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을 줄 아는 어른이 됐다. "예전에는 '이런 역할 해보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는데, 이제는 그 역할을 하고도 내가 나로서 건강하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를 같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연기를 계속 사랑하면서, 다도 같이 지키고 싶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