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계엄 1년, 국민의힘 '어차피 다 잊는다' 안주할 땐가

기사입력 2025-12-02 08:12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29일 대전 중구 으능정이 거리에서 열린 '국민의힘 민생회복 법치수호 국민대회'에서 양향자 최고위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은 불법이었다"고 발언하자 당원들이 종이컵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는 등 항의했다. 2025.11.29 jyo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그 옆은 윤상현 의원. 2025.3.8 yatoya@yna.co.kr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9일 청주시 상당구 육거리종합시장에서 열린 민생회복 법치수호 충북 국민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5.11.29 [국민의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나라에 헌신, 그게 죄?'…자부심과 상실감, 보수 정서 기반

'차별 트라우마' 호남은 달라…보수 지지층 30% 선에 갇혀

野 주류에 윤어게인 편입, 계엄의 강 못넘고 내홍 거듭

황교안 2020총선참패→이준석 2022대선승리서 해법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59년 이전에 출생한 고령층(65세 이상)은 산업화와 민주화, 외환위기, 나아가 오늘의 이념·지역·세대 갈등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다. 식민지와 6·25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부모 밑에서 성장한 만큼 근면하고 강한 민족주의 정서와 반공 의식을 공유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는 '국가 우선' 의식도 이 세대의 중요한 특징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불가피성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박정희·정주영·이병철을 평가할 때 경제발전의 공로를 앞세운다. 다음 세대의 개인주의와 진보 성향, 이른바 3D 업종 기피를 개탄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들의 자부심은 민주화로 변곡점을 맞는다. 자신과 부모 세대가 피땀 흘려 일군 선진국의 기반이 단순히 권위주의의 부작용으로 규정되거나 평가절하되는 현실을 목도했다. 이들이 후대에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라 생애 전체가 부정되는 듯한 극심한 상실감에 가깝다.

바로 이 감정선이 보수의 '30% 콘크리트 지지층'을 떠받치는 기초다.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국민의힘)와 이준석(개혁신당)이 도합 49.49%를 획득하는 예상 밖 결과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이 세대가 여전히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공감하는 것도 이런 상실감에서 파생한다.

다만, 고령층 내부에서도 지역에 따라 과거에 대한 해석이 크게 엇갈린다. 이런 차이는 선거의 선택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후대의 정치적 DNA까지 좌우한다. 특히 호남 고령층은 산업화 시기 차별과 5·18 광주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품고 있어 '30% 지지층'과는 분리해 바라봐야 한다.

12·3 비상계엄 1주년을 앞두고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5~35% 안팎을 오간다. 장동혁 신주류와 윤어게인 세력, 그리고 이에 맞서는 한동훈 구주류 간의 극심한 내홍에도 일정 수준의 지지율이 유지되는 현실은, "1년만 지나면 (국민들은) 탄핵이고 뭐고 다 잊는다"며 윤석열 탄핵안 처리를 막으려 했던 윤상현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이 30%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지층의 결속력은 강하지만, 동시에 고령층·영남 중심이라는 구조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30%만으로는 여권의 독주를 견제할 수도,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다.

더욱이 이 30%는 연령 구조 자체가 한계를 노정하고 있으며, 상실감과 박정희 향수에 기반한 지지이기에 세 확장도 어렵다. 과거·권위·감정에 의존하는 정치는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 구태와 아집으로 비치며 외연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활로가 좁은 것은 아니다. 핵심 지지층의 인생 서사를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감정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전략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에 해답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40·50세대와 호남이 지닌 전혀 다른 경험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경제발전 뒤에 가려진 소수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포용의 정치가 요구된다.

국민의힘은 1년째 계엄의 늪에 빠져 있다. 반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견제세력으로 거듭나고 정권 탈환의 길을 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윤석열'이라는 족쇄부터 과감히 벗어던져야 하는데, 성난 지지층을 의식하며 여권의 실패에 기대려는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

윤상현의 말처럼 30% 지지층은 비상계엄에 분노하다가 '우리가 남이가'로 돌아온 형국이지만, 이는 야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여당이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2019년 겨울 아스팔트에서 단식했던 황교안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중도 빅텐트를 친 이준석과 김종인은 문재인의 검사 윤석열을 끌어들여 대선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일궈냈다. 30%의 벽을 넘어, 모두가 공감하는 집권 방정식에 눈길을 주기 바란다.

jahn@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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