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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수현기자] 방송인 장도연이 유일한 박사의 생애를 들여다본다.
1971년 4월, 국내 제약업계 매출 1위 기업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되며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은 '나의 전 재산은 학교 재단에', '아들에겐 한 푼 없이 자립하라'와 같은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그의 결단과 정신은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과 귀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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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간 유일한은 한국인 최초로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사업 아이템은 뜻밖에도 '숙주나물'이었다. 만두를 즐기는 이민 사회의 식문화를 꿰뚫은 그는, 만두에 꼭 필요한 숙주나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그렇게 유일한은 미국에서 백만장자가 된다. 그러나 그의 다음 선택은 안락한 정착이 아니었다. 1926년, 식민 지배의 한복판에 놓여 있던 조국으로 스스로 귀국했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수탈 속에서 기생충과 빈대가 들끓을 만큼 위생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어린아이가 쓰러졌는데, 몸무게가 20kg에 불과한 아이의 몸에서 무려 5kg에 달하는 천여 마리의 회충이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병에 걸려도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조차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목격한 유일한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교수직 제안을 고사하고, 제약회사를 세워 국민에게 필요한 약을 공급하는 일에 나선다.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유한양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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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재산을 들여 유한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전교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훈장 수여식은 사양하면서도 유한공업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참석할 만큼 학생들을 각별히 아꼈던 유일한 회장. 당시 장학금을 받았던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 교수는 "그 장학금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회상했다.
이날 출연한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는 "유일한 박사가 실천한 건 의료의 민주화였다. 약과 치료가 돈 있는 사람이나 지식인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다"며 "시대를 앞섰던 인생의 위인"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를 들은 장도연 역시 "우리 모두 유일한 박사에게 빚을 지고 사는 셈이네요"라며 그의 삶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보여준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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