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이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백전노장 딕 아드보카트(78)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 출전한지 꼭 20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는다. 네덜란드 출신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퀴라소(FIFA 랭킹 82위)는 19일(한국시각) 자메이카 킹스톤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자메이카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북중미 3차예선 B조 6차전 최종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조 선두를 질주하던 퀴라소는 이날 무승부로 3승3무(승점 12)를 기록, 이날 뒤집기를 노린 2위 자메이카(승점 11)를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월드컵 직행 티켓을 따냈다. 북중미 3차예선에선 조 1위 3개팀이 본선에 직행하고, 2위팀 중 성적이 좋은 2팀이 대륙간 플레이오프(PO)에 나선다.
인구가 15만명이 조금 넘는 퀴라소는 월드컵 역사상 최소 규모 국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상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누빌 전망이다. 퀴라소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아이슬란드의 면적보다 작다. 10년 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50위였던 퀴라소는 2024년 1월 아드보카트 감독을 만나 성장을 거듭하더니 현재 82위까지 점프했다. 북중미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되고, 북중미연맹에 속한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하면서 퀴라소에도 기회가 돌아갔다. 맨유 유스 출신 미드필더 타이티 총(셰필드 유나이티드) 등 네덜란드 귀화 선수를 앞세워 역사를 이뤘다.
퀴라소의 합류로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 데뷔하는 국가가 4개국으로 늘었다. 앞서 아시아의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아프리카의 카보베르데가 사상 최초로 본선 티켓을 챙겼다. 퀴라소는 FIFA 랭킹상 4번 포트로 분류되어 2번 포트가 확정된 한국과 조별리그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독일월드컵 당시 코치였던 홍명보 현 한국 대표팀 감독과 지략대결을 펼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단 의미다. 약체 퀴라소와의 맞대결은 16강 이상의 성적을 노리는 홍명보호에도 호재다. 월드컵 조 추첨은 12월6일에 진행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역사적인 순간을 멀리서 지켜봤다. 퀴라소축구협회에 따르면, 개인사정으로 자메이카전을 지휘하지 않았다. 영국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선 무대에서도 지휘봉을 잡으면 월드컵 역대 최고령 사령탑이 된다. 종전 최고령 기록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71세 나이로 그리스를 이끈 오토 레하겔 감독이 보유했다. 20년의 세월을 둔 월드컵 진출은 축구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대기록이다.
이날 패하지만 않으면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퀴라소는 수차례 위기를 넘겼다. 자메이카의 페널티킥이 비디오판독시스템 판독을 거쳐 취소됐고, 후반 44분 자메이카의 조나단 러셀이 누적경고로 퇴장하는 행운까지 따랐다. 자메이카는 홈팬 앞에서 단 1골만 넣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하늘은 끝내 그 한 골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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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넷플릭스 영화 '수리남'의 수리남도 퀴라소와 더불어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직행을 노렸다. 무패를 질주하던 수리남은 같은 날 북중미 3차예선 A조 최종전에서 과테말라에 1대3으로 덜미를 잡히며 엘살바도르를 3대0으로 꺾은 파나마에 역전을 허용했다. 파나마가 승점 12를 기록, 수리남(승점 9)을 끌어내리고 본선행에 골인했다. C조에선 아이티(승점 11)가 니카과라(승점 4)를 2대0으로 꺾고, 같은시각 온두라스(승점 9)가 코스타리카(승점 7)와 0대0으로 비겼다. 이로써 조 2위였던 아이티가 온두라스를 끌어내리고 1974년 서독월드컵 이후 52년만에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북중미 예선은 어느 대륙보다 뜨거운 명승부를 연출했다.
북중미에선 캐나다, 미국, 멕시코, 퀴라소, 파나마, 아이티 등 지금까지 6팀이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조 2위 중 성적이 좋은 자메이카와 수리남이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