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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웨이트전을 앞두고 A대표팀에 소집된 최태욱이 보은과 명예회복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FC서울 소속인 최태욱이 득점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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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31·FC서울)은 한때 한국 축구의 미래로 평가 받던 선수다.
부평고 시절 이천수, 박용호와 함게 '부평고 3인방'으로 활약하며 전국 무대를 휩쓸었다.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패스, 높은 골 결정력에 성실한 훈련과 생활까지 더해져 고교 시절에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다던 이천수보다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교 졸업 직후인 2000년 안양LG(현 FC서울)에 입단하면서 프로무대를 밟았고, 올림픽대표팀을 넘어 A대표팀까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2002년 한-일월드컵 최종명단에 최태욱을 포함 시켰다. 모두가 그의 기량을 인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라운드에 서는 시간이 짧아졌다. 여린 마음이 문제였다. 기량은 나무랄 것이 없었지만,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을 꺼리고 곧잘 넘어지기 일쑤였다. 투쟁심이 부족한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2004년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이듬해에는 일본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에 입단해 해외 무대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한 시즌을 마친 뒤 이적을 거듭했다. 2006년 국내로 복귀해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으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도 최태욱을 외면했다. 두 시즌 동안 23경기 출전 1골에 그쳤다. 공격수에서 측면 수비수로 내려오는 포지션 변경까지 감행했지만, 좀처럼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촉망받던 유망주 최태욱은 그렇게 '피지 못하고 지는 꽃'이 되는 듯 했다.
이런 최태욱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08년부터 였다. K-리그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사실 리그 초반에는 각광을 받지 못했다. 여린 마음은 전북의 거친 플레이 스타일을 견뎌내지 못했다. 최 감독은 당시 "따로 불러서 달래기도 했고, 혼낼 때도 있었다. 심지어 편지까지 써서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우리 최 목사(최태욱 별명)가 빨리 잠에서 깨어나야 할텐데"라고 장탄식을 했다. 최 감독의 정성이 통했는지 최태욱은 2008년 K-리그 후반기 전북의 돌풍을 이끌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팀의 창단 후 첫 우승에 공헌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최 감독에게 '재활공장장'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최태욱 입장에서 최 감독은 자신의 기량을 다시 만개하게 만들어 준 '은사'다.
2010년을 끝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던 제자와 스승은 A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다시 만났다. 최 감독은 한국 축구의 명운이 걸려 있는 쿠웨이트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주저없이 애제자 최태욱을 호출했다. 측면 공격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놓으면서 최전방 공격에 힘을 실어주는 닥공(닥치고 공격)에 최태욱은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최 감독 밑에서 3년을 수련하며 기량을 되살린 최태욱은 자신에게 주어질 임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태욱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승부조작으로 K-리그에서 퇴출된 최성국을 옹호하는 메시지를 남겼다가 팬들의 십자포화를 당했다. 하지만 최태욱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사람이라면 최태욱이 승부조작을 대수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동료애를 발산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쿠웨이트전은 최태욱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영암=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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