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효 "황선홍, 결혼만 빨리 했다면 독일서 성공했을 것"

기사입력 2012-04-09 14:14


◇황선홍 포항 감독(왼쪽)과 윤성효 감독의 인연 시작은 21년전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지도자는 축구 선후배 사이로 현재까지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황 감독과 윤 감독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황 감독이요? 허허, 많은 추억이 있지예."

윤성효 수원 감독은 황선홍 포항 감독 이야기가 나오자 싱긋 웃음을 지었다. 20년 넘게 인연이 이어져 K-리그까지 왔다. 지금은 승부를 놓고 양보할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한때는 축구 선후배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로 동고동락하면서 추억을 나눴다.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2년 K-리그 7라운드에서 황 감독이 이끄는 포항과의 일전을 앞둔 윤 감독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독일 떠나는 날, 구단에 "황선홍 같이 데려가자" 졸라

1991년 한국 축구계에는 전대미문의 파문이 휘몰아쳤다.

대형 공격수와 수비수로 주목을 받았던 황선홍과 홍명보가 드래프트를 전면 거부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학 졸업 후 드래프트로 지명받은 팀에 입단하는 것이 관례와 같이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가운데 황선홍은 홀로 독일로 출국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레버쿠젠의 2군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 입장에서 홀로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지금처럼 동료 해외파가 많거나 자신을 챙겨주는 에이전트도 없던 때였다. 모든 것을 황선홍 홀로 책임져야 했다.

윤성효 수원 감독이 황선홍 포항 감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 때다. 당시 포항제철(현 포항) 소속이었던 윤 감독은 동계 전지훈련차 찾아간 독일에서 황 감독과 대면했다. 향수병으로 절치부심하던 황 감독은 두 팔을 벌려 포철 선수단을 환영했다. 프로 6년차로 베테랑 대열에 막 접어든 윤 감독은 후배 황 감독을 친동생처럼 챙겼다. 황 감독도 윤 감독을 친형처럼 따랐다. 윤 감독은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고생을 많이 하다보니 우리(포철 선수단)를 굉장히 반가워 하더라. 운동이 끝나면 저녁마다 함께 밥도 같이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3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이별의 순간 누구보다 슬퍼했던 것은 황 감독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윤 감독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었다. "독일을 떠날 때 (황선홍을) 두고 와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구단에 같이 데려가게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윤 감독은 "당시 외국 생활이 힘든 시절이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요즘 선수들처럼 20대 초반에 결혼하고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황 감독도 아마 성공했을 것이다. 기량은 당시 누구와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고 추억했다.

몰수패의 추억

세월이 흘러 윤 감독은 포항을 떠나 대우로얄즈(현 부산)를 거쳐 1996년 K-리그에 참가한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1986년 한일은행을 통해 프로무대를 밟은 뒤 어느덧 10년차가 된 시절이었다. 팀의 베테랑으로 종횡무진 했다. 1996년 10월 2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윤 감독은 포항의 간판 공격수가 된 황 감독과 다시 마주쳤다. 골 대결이 이어졌다. 경기시작 1분 만에 황 감독이 득점에 성공하며 선공에 나섰다. 윤 감독도 질세라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경기는 점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열기가 정점에 달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경기가 중단됐다. 아디와 바데아, 유리를 그라운드에 내보낸 수원 벤치가 교체카드로 데니스를 내민 것을 본 포항 벤치 쪽에서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외국인 선수 3명까지 출전시킬 수 있음)을 들어 항의하자 주심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수원이 앞서 기록한 골이 모두 무효처리 됐고, 경기는 포항의 몰수승으로 허무하게 마무리 됐다. 황당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서 있던 윤 감독 옆으로 황 감독이 다가와 속삭였다. "형, 형은 나이도 많은데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에서 중거리슛으로 골을 넣으셨어요?"


양보는 없다

2000년 윤 감독은 수원 코치로 부임한 뒤 황 감독 영입을 추천했다. 당시 황 감독은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와 계약이 만료된 상태였다. "여러 공격수를 찾았지만, 황선홍 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생각에 구단에 건의를 했다." 황 감독은 2000년 K-리그에서 수원 유니폼을 입고 윤 감독과 사제지간으로 호흡을 맞췄다.

윤 감독은 "황 감독과는 지금도 서로 잘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선후배 관계가 지금보다 엄해 살갑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잘 지내왔다"고 웃었다. 하지만 승부는 양보할 수 없는 법이다. 전남전에서 무승부에 그친 수원은 갈 길이 급하다. 포항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성남전 완승을 거둔 포항도 수원전 원정 무승 징크스 털기를 노리고 있다. 윤 감독은 황 감독과의 추억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황 감독과 승부를 갈라야 한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그동안 우리 팀은 포항을 상대로 홈에서 좋은 경기를 해 왔다. 안방에서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생각이다."
화성=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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