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고 '범생이'여자축구클럽'발모아'의 유쾌한 도전

기사입력 2012-04-16 15:57


◇이정미 가락고 여자축구클럽 발모아 감독 겸 지도교사와 가락고 메시로 회자되는 주장 배선영

◇하프타임 이정미 발모아 지도교사가 학생들의 얼굴에 선크림을 직접 발라주고있다. 그라운드 여전사들의 얼굴엔 행복감이 가득하다.

◇17번 김근미 선수가 몸싸움을 하다 그라운드에 넘어졌다. 이정미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동료선수가 직접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있다.

"파울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해? 미안하다고 하고 엉덩이 두드려줘야지. 서로 인상 쓰면 안돼." "서로 말을 많이 해야지, 실수해도 잘했다. 잘했을 땐 더 큰소리로 잘했다! 알았지?"

1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사대부고 운동장에서 열린 서울시 학교스포츠클럽 개막전, 가락고 여자축구클럽 '발모아' 이정미 교사(42)의 씩씩한 주문에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예!" 한다. 그을린 얼굴에 함박웃음이 싱그럽다. 봄볕 좋은 토요일, 학원버스에 오르는 대신 그라운드에 나섰다. 축구하는 여고생들의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빛났다.

이 교사는 교내 여자축구클럽 '발모아'의 감독이자 지도교사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출신으로 그 자신 송파구 여성축구단의 주전 미드필더, 13년차 아마추어 축구선수다. 세 딸을 가진 엄마이자 국가대표 구자철, 서정진을 발굴하고 키워낸 문선철 보인고 총감독의 아내다. 대학시절 머리, 상체, 하체를 함께 쓰는 축구의 무한매력에 푹 빠졌다. 제자들과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지난해 5월 처음 학교 스포츠클럽으로 시작한 '발모아'는 불과 4개월만에 서울시교육감배 학교 스포츠클럽대회에서 우승했고, 르꼬끄배 전국 왕중왕전에서 준우승을 꿰찼다. '축구 잘하는' 아이들이 아닌, '축구 좋아하는' 아이들이 일을 냈다.

이 교사는 "운동하는 아이들은 공부 못한다. 학교생활에 관심 없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뭐든 열심이다.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축구를 시작한 이후 성적도 쭉쭉 올랐다"며 웃었다. "주말마다 축구로 스트레스를 푼다. 좋아하는 축구를 하기 위해 공부할 땐 더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경기 내내 열정적이었다. "잘했어! 좋아!"라는 칭찬이 가장 많았다. "선영아! 위로!" "예지야, 더 내려서!" 작전 지시를 하느라 이내 목소리는 다 쉬어버렸다. 하프타임엔 선크림을 손수 들고 나섰다. "기미 생기면 안돼!" 빨갛게 달아오른 제자들의 얼굴에 일일이 선크림을 발라준다. 넘어져 쓰라린 무릎에 연고를 발라주며 상처를 다독였다.

이날 '가락고 메시' 주장 배선영양(17)은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연예인축구단 FC리베로전에서 해트트릭, 개막전인 건국대사대부고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펄펄 날았다. "중학교 때 남자애들이랑 교회에서 축구를 했었다. 요즘은 1주일에 3번 훈련한다. 체력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좋아져서 성적이 많이 올랐다. 축구를 하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며 웃었다. 물론 잘하는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좋
◇여학생들이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고 남학생들이 관전한다. 목청껏 뜨거운 응원전도 펼쳤다. 생경하지만 기분좋은 풍경이다.
아하는 이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물 당번, 의료 당번 등 그라운드 안팎에서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발모아'를 홍보하는 영자신문까지 창간했다. 백업 멤버들은 응원과 팀 홍보에 열을 올린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국제중학교를 졸업한 윙포워드 장유정양(17)은 팀의 에이스다. 학교 스포츠클럽 활성화에 반가움을 표했다. "미국에서는 스포츠클럽이 일상화돼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만 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교육과학기술부의 창의경영학교로 지정되면서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돼 너무 좋다"고 했다. "여교사인 이 선생님의 파이팅도 큰 동기부여가 된다"면서 "남자선생님이 아닌 여자선생님이 직접 킥과 드리블을 가르쳐주시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는다. 선생님은 롤모델이자 멘토"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성공적인 학교 스포츠클럽은 가족문화까지 바꾸어놓았다. 주말마다 열리는 스포츠클럽 리그 경기는 가족 축제다. 딸들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온가족이 출동한다. 수비형 미드필더 홍예지(17)의 아버지 홍성기씨(52)는 "틈날 때마다 딸과 운동장에 나선다"고 했다. 축구를 하면서 아이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밝아지고 부지런해졌다. 홍씨는 "축구를 시작한 이후 아침 6시반이면 스스로 일어난다. 깨우느라 실랑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딸과 함께 공을 찰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스포츠의 변방에 머무르던 여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섰다. 남학생들이 독점하던 운동장을 여학생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날 관중석에서 여학생들의 파이팅을 한목소리로 응원하는 남학생들의 모습은 인상깊었다. 토요일, 유쾌한 학교 스포츠클럽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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