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땀을 흘리며 승리라는 한가지 목표를 일구는 인연은 더 값질 수밖에 없다. 최강희호 2기가 17일 발표됐다. 발탁된 26명의 선수들 중 최강희 A대표팀 감독(53)과 인연을 맺었던 선수들은 세 명 정도로 압축된다. 이동국(33·전북) 염기훈(29) 김두현(30·이상 경찰청)이다. '사제의 인연'을 맺은 이들의 사연을 되돌아본다.
최강희-이동국 '믿음'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정도의 사이가 됐다. 둘의 연결고리는 '믿음'이다. 강하게 묶여있다. 이동국에게 최 감독은 '제2의 축구인생'을 마련해준 '은사'다. 인연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팀 코치와 선수로 시작됐다. 이후 6년여 만에 재회했다. 잉글랜드 미들스브러와 K-리그 성남에서 좌절을 맛본 이동국이 2008년 말 전북으로 둥지를 옮겼다. 당시 이동국은 최 감독의 믿음에 반했다. 동계훈련 때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은 자신에게 끝까지 신뢰를 줬다. 결국 이동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22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인생의 한'으로 남아있는 월드컵도 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준 최 감독이다. 최강희호에서 이동국은 단연 주전 공격수이자 해결사다. 최 감독도 부활한 이동국의 덕을 톡톡히 봤다. 2009년과 2011년 K-리그 정상에 섰다. 지난해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도 거뒀다. 최 감독은 "내가 동국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선수 스스로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주는 모습이 좋다. 그런 관계가 되면 서로 말이 필요없다. 동국이는 그런 기본적 자세가 되어 있다"고 했다.
김두현(오른쪽). 스포츠조선DB
최강희-염기훈 '애증'
최 감독에게 염기훈은 '애증의 제자'로 남아있다. 200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일조한 염기훈의 이적 소식이 2007년 시즌 도중 전해졌다. 아시안컵 기간이었다. 최 감독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연봉협상 때 바이아웃 조항이 삽입됐다. 최 감독은 '전력의 핵'이었던 염기훈을 설득시키기 위해 국제전화로 '삼고초려'를 했다. 그러나 실패였다. 선수의 마음은 이미 떠나있었다. 그런데 염기훈은 진행하고 있던 구단과의 계약이 되지 않으면서 2대1 트레이드로 울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감독과 전북 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염기훈의 논란은 최 감독에게 약이 됐다. 최 감독은 "염기훈은 당시 오기를 심어줬다. 후폭풍을 우려했다. 남은 선수들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염기훈 없이도 제대로 만들어서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현재 A대표팀에는 염기훈이 절실하게 필요하단다. 최 감독은 '악연'을 다시 '인연'으로 돌리려고 한다.
전북 소속 당시 염기훈. 스포츠조선DB
최강희-김두현 '안타까움'
김두현은 2001년 최 감독이 수원의 수석코치일 당시 인연을 맺었다. 통진종고를 막 졸업한 뒤 프로가 된 김두현은 잠재력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당시 최 감독은 김두현에게 호랑이 코치였다. 부족한 점을 많이 지적했다. 최 감독은 "두현이에게 수비밸런스와 약한 체력을 끌어 올리라고 주문을 많이 했다. 2군에서 있었기 때문에 깊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에서 다시 만난 것이 전부다. 그러나 최 감독은 김두현을 챙겼다. 잉글랜드 웨스트브로미치에서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K-리그로 유턴했을 당시 힘들어하던 김두현의 멘토였다. 격려는 김두현을 지금까지 버티게 한 힘이었다. 최 감독은 "두현이는 미드필드에서 경험도 있고 굉장히 경기운영을 잘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수비가담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