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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고, 찢어졌다. 42차례나 휘슬이 울렸다. 7장의 옐로카드에 이어 1장의 레드카드가 대미를 장식했다. 90분이 막을 내렸다. 끝나지 않았다. 양 구단 관계자간에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구급차가 등장하고, 공권력이 가세했다. 패전의 멍에를 안은 팀은 1시간여동안 버스에 갇혔다. 20일 오후 7시 30분 킥오프된 경기는 21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FC서울과 수원의 62번째 충돌이 막을 내렸다. 클래식 더비, 슈퍼매치,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정한 '아시아 최고의 더비(Asia's top derby)', 앙숙 전쟁은 또 다른 역사를 썼다.
라이벌전이 그렇듯 질은 중요치 않았다. 결과만을 놓고 충돌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옐로카드가 나왔다. 승패를 떠나 막판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거칠었던 감정싸움은 경기 종료 직전 정점을 찍었다. 축구에서 보기 드문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김진규(서울)와 오장은(수원)이 충돌했다. 몸싸움을 하던 주위로 선수들이 몰렸고, 박현범(수원)이 가세하면서 난투극 직전까지 갔다. 양팀 감독은 물론 코치진, 벤치 멤버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두 팀의 충돌은 양팀 감독의 제어로 일단락됐다. 김진규가 퇴장을 당했다. 그래도 마지막 선은 지켰다. 수원이 2대0으로 승리했다. 승장인 윤성효 수원 감독은 "서로 사고없이 좋은 경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전쟁같은 축구가 역설적으로 반갑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 이날 빅뱅은 싸움이 아닌 '흥정'이었다. K-리그는 지난해 승부조작 파문 후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있다.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 더 뜨겁게, 화끈하게 싸워야하지만 성적지상주의가 팽배해 있다.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서울-수원전이 방향타다. 이날 무대는 FA컵이지만 더 큰 숲은 K-리그다. 두 팀은 한국 프로축구의 얼굴이다. K-리그를 이끄는 양대산맥이다. 올시즌도 서울이 정규리그에서 1위(승점 34)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수원이 3위(승점 33)에 포진해 있다. 두 팀의 승점 차는 불과 1점이다.
홈평균 관중이 두 구단만 2만명을 넘는다. 싸움판을 벌려놓았다. 사생결단식으로 으르렁거리면 팬들도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체 리그가 상향평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유럽, 남미 축구도 라이벌전이 리그를 이끈다. 싸울 때는 더 거칠게 싸워야 한다. 앙숙 전쟁이 반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축구경기 하나를 두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양 팀이 그만큼 서로와의 대결에 처절하게 올인한다는 뜻이 되고,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상품이 된다는 뜻이다.
다만 한가지, 도를 넘어서는 안된다. 이날 '옥에 티'는 프런트간의 다툼이었다. 수원의 A과장이 경기 후 서울의 B대리를 폭행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B대리는 입원했고, 경찰 조사를 받은 A과장은 '모욕죄'로 맞고소했다. 가장 냉정해야 할 프런트 관계자들이 부화뇌동해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이유가 어떻든 가해자가 머리를 숙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
모든 것이 역사다. 각본없는 드라마는 또 다른 페이지를 썼다. 최고의 히트상품 서울-수원전은 명불허전이었다. 진화하고 있었다. 8월 18일 K-리그에서의 두 번째 충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