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스, 벽을 허물자]②서포터스는 권력인가? 그 허와 실

최종수정 2012-07-03 09:13

"서포터스가 면담을 요구하는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마치 권력이라도 가진 듯 구단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구단이 넘어져 있으면 손을 잡고 일으켜줘야 하는게 서포터스인데 오히려 손을 짓밟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K-리그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점점 과격해지는 서포터들의 항의에 대응하느라 녹초가 됐다고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경기력에 불만을 제기하던 의견들이 오프라인에서 거대 집단으로 돌변, 구단의 버스를 가로막고 감독에게 면담을 요구하는 등의 단체 행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포터스 태생의 근간까지 흔들릴 정도다. 당초 서포터스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소모임을 만들며 시작됐고, 경기장에서 온-오프라인 통합 모임으로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골대 뒤에서 팀을 응원하는 모임'인 서포터스 탄생은 한국 축구에 새 물결을 일으켰다. 거대 집단이 펼치는 조직적인 응원 문화는 K-리그를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때로 이들이 보여준 침묵 응원과 응원 보이콧이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채찍이 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영광의 순간도 그들이 없었다면 '축구인들만의 축제'가 됐을 것이다. K-리그는 팬들과 함께 30년 역사를 써왔다.

그러나 순수하게 '자신의 팀'을 응원하던 K-리그 12번째 선수 서포터스가 순수성을 잃고 있다. 손에 잡힐 듯한 힘이 마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듯 압력을 가하는 단체행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팀 성적 향상'이라는 명제는 허울 좋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서포터스의 이름으로 구단에 '요구'를 하는 것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권력화되는 부작용이다.

권력의 태생은 이들의 조직 구성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부산물이다. K-리그의 대표 서포터스 중 하나인 수원 삼성의 '그랑블루(현이름 프렌테 트리콜로)' 조직구성을 보면 소모임 수는 약 50여개 이상. 전체 인원은 약 5만명으로 추정된다. 실제 활동하는 인원은 1만2000여명 정도다. 회장이 있고 그 아래 사무국장과 운영진 및 소모임장이 있다. 굵직한 안건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서포터스가 소모임의 집합체인만큼 각 소모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힘 다툼이 치열하다. 또 소모임의 성격에 따라 응원 방식에 의견 차이를 보이다보니 서포터스 내 파벌이 생겼다. 문제는 회장 및 사무국을 둔 하나의 거대 조직체가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하면서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권력 다툼으로 인한 분열이 서포터스의 순수성을 갉아먹고 있는 징후가 목격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서포터스는 최근 2~3년간 두 개의 내부 집단이 반목을 했다. 집행부의 의견차가 시발점이 됐다. 서로 이간질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하나의 팀을 응원하던 서포터스는 응원가의 사용 권리를 두고 다투는 웃지 못할 코미디까지 벌였다. 여당과 야당이 충돌을 일삼는 정치권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 서포터가 밝힌 뒷얘기는 충격적이다. "우리 서포터스가 잘 나갈때는 소모임이 잘돌아갔다. 하지만 어느덧 집행부의 힘이 세지고 권력을 잡기 위해 소모임의 힘을 약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소모임 홈페이지에 가입을 해서 감시까지 하고 있다. "

'군중 심리'가 삐뚤어진 힘 과시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수년 전 폭력사태에 자주 연루됐던 지방의 한 구단 서포터는 폭력 사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다수의 서포터스는 구단 운영에 큰 관심이 없다. 싸움이나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군중심리가 가장 큰 원인이다. 1대1로 싸우면 다 피해도 집단으로 몰려다니다보니 폭력에 가담하게 된다. 이는 거대한 모임 속에서 강경파 소모임이 힘을 과시하기 위한 '보여주기 행위'일 때가 많다."

순수 응원단체였던 서포터스는 압력단체가 아니다. 감독과 구단에 간섭하는 단체행동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은 권력의 이면이 그려낸 삐뚤어진 자화상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선수들이 한 발 더 뛸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줄 때 서포터스의 진짜 권력이 발휘된다. 선수들의 경기력에 해가 되는 집단행동은 그들 스스로 존재 가치에 흠집을 내는 행위일 뿐이다. 폭력적인 응원 또한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서포터스가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빠져나올 때 한국 축구의 응원 문화 또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서포터스가 K-리그와 함께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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