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유럽리거의 답은 박지성이다

기사입력 2012-07-08 14:56


박지성.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m.com

주말 내내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한 박지성의 퀸스파크레인저스(QPR)행 루머가 현실로 되는 분위기다.

2003년 PSV에인트호벤에서부터 출발해 수많은 영광을 만들어낸 2005년 맨유 이적, 그리고 2012년 실리를 택한 QPR행까지. 박지성이 남긴 발자취는 유럽에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 재능들에게 그 자체로 모범답안이다.

2003년 PSV에인트호벤행-낮은 단계부터 차근히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박지성에게 유럽팀의 오퍼가 이어졌다. 박지성의 선택은 PSV에인트호벤이었다. 물론 그의 선택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존재가 컸다. 박지성은 이적 초기 부상과 적응실패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야유를 보내던 홈팬들은 '위숭 빠르크'라는 노래를 만들며 박지성을 응원했다. 박지성은 2004~2005시즌 에인트호벤을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끌며 환호에 답했다. 박지성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이적 후 세 시즌 뒤부터였다. 아시아와 유럽 무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 변화를 한순간에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박지성은 이 세시즌 동안 거친 유럽축구스타일과 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2005년 맨유행-기회가 온다면 확실히

2005년 맨유로부터의 이적제의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맨유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다. 박지성의 맨유행 루머가 터졌을때 '빅클럽으로 가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은사' 히딩크 감독 역시 맨유행을 만류했다. 아직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고, 출전보다는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박지성은 주저하지 않았다. 빅클럽으로부터의 제안은 쉽게 오지 않는다. 아스널을 택한 박주영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당시 여러팀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계산하던 박지성은 확신을 갖고 맨유를 택했다. 이 후 박지성은 '맨유맨'으로 당당히 자리잡으며 7시즌을 소화했다. 두번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 멤버로 뛴 박지성의 맨유 생활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2012년 QPR행-뛸 수 없다면 과감히

박지성의 2011~2012시즌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은 프리시즌부터 좋은 컨디션을 보이며 두자리수 골도 가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이렇다할 부상이 없었음에도 충분한 출전시간을 부여받지 못했다. 숱한 위기설을 딛고 지금까지 온 박지성이었지만, 세대교체의 여파로 팀내 입지가 줄어든 것만큼은 확실했다. 경쟁자는 늘었고, 박지성의 나이도 늘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세계 최고의 클럽의 일원이라는 '명분'과 선수라면 뛰어야 한다는 '실리' 사이에서 고민했다. 박지성은 다시 한번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 진출만으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에서 뛰며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박지성의 QPR행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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