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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한 박지성의 퀸스파크레인저스(QPR)행 루머가 현실로 되는 분위기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박지성에게 유럽팀의 오퍼가 이어졌다. 박지성의 선택은 PSV에인트호벤이었다. 물론 그의 선택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존재가 컸다. 박지성은 이적 초기 부상과 적응실패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야유를 보내던 홈팬들은 '위숭 빠르크'라는 노래를 만들며 박지성을 응원했다. 박지성은 2004~2005시즌 에인트호벤을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끌며 환호에 답했다. 박지성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이적 후 세 시즌 뒤부터였다. 아시아와 유럽 무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 변화를 한순간에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박지성은 이 세시즌 동안 거친 유럽축구스타일과 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2005년 맨유행-기회가 온다면 확실히
2012년 QPR행-뛸 수 없다면 과감히
박지성의 2011~2012시즌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은 프리시즌부터 좋은 컨디션을 보이며 두자리수 골도 가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이렇다할 부상이 없었음에도 충분한 출전시간을 부여받지 못했다. 숱한 위기설을 딛고 지금까지 온 박지성이었지만, 세대교체의 여파로 팀내 입지가 줄어든 것만큼은 확실했다. 경쟁자는 늘었고, 박지성의 나이도 늘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세계 최고의 클럽의 일원이라는 '명분'과 선수라면 뛰어야 한다는 '실리' 사이에서 고민했다. 박지성은 다시 한번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 진출만으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에서 뛰며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박지성의 QPR행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